[세계의 눈/모리스 아이저먼]K2 등반사고의 교훈

  • 입력 2008년 8월 15일 02시 56분


네덜란드 산악인 빌코 판 로이옌 씨는 최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봉우리 K2 정상 부근에서 산사태를 겪으며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이번 사고로 11명이 숨졌다.

그는 얼음 봉우리가 무너지면서 각국 원정대가 몸을 의지하던 밧줄이 모두 쓸려 내려가던 당시 상황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한탄했다. “사고 당시 왜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치지 않고 혼자만 살려고 애썼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히말라야 등반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항상 예기치 않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서로 책임감을 갖고 함께 노력하던 전통적 원정대 문화가 ‘개인주의’와 ‘자기보호’만 생각하는 세태로 바뀌어버렸기 때문.

55년 전 K2 등반에 나섰다가 절체절명의 위험에 처했던 한 원정대의 이야기는 이런 차이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유명 산악인 찰스 휴스턴 씨는 1953년 8월 8명의 원정대를 이끌고 첫 K2 등정에 나섰다. 등반은 순조롭게 이뤄졌고 원정대는 8월 1일 7711m 지점에 이르렀다. 날씨가 좋았다면 원정대는 이틀 안에 8610m 지점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원정대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게다가 원정대 가운데 처음 히말라야 등정에 나섰던 아트 길키 씨는 왼쪽 다리 혈관에 염증이 생겨 걸을 수 없게 됐다. 염증이 폐로 번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대원들은 길키 씨를 2700여 m 아래의 베이스캠프까지 안전하게 옮기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를 그곳에 남겨두고 간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8월 10일, 그들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원정대는 길키 씨에게 마취약을 투여하고 침낭으로 감싼 뒤 천천히 끌고 내려갔다. 몇백 m 내려가는 데 6시간이 걸렸다. 오후 3시경 원정대는 자신들이 산을 올라갈 때 텐트를 쳤던 캠프7에 도착했다. 그때 한 대원이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대원들의 밧줄이 서로 엉켰다. 원정대 전체가 얼음 절벽 속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것. 하지만 맨 위쪽에서 길키 씨의 침낭을 바위에 묶어 놓고 등산용 얼음도끼로 자신의 몸을 고정하고 있던 피트 씨가 밧줄을 바위와 자신의 몸에 묶어 당기는 사투 끝에 원정대의 목숨을 구했다.

그날 저녁, 원정대는 안전한 곳에 텐트를 치기 위해 길키 씨의 침낭을 밧줄과 얼음도끼로 고정해 놓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왔을 때 길키 씨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눈사태가 그를 휩쓸어간 것인지, 다른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길키 씨가 스스로 밧줄을 풀어 자신을 희생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원정대는 8월 15일 마침내 베이스캠프에 돌아왔다. 길키 씨의 희생을 기리는 이정표를 그곳에 세웠다. 이정표는 지금도 그 자리에 세워져 있다.

K2 등반은 산악인들 사이에 종종 전설로 전해온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피어나는 대원들의 용기는 찬사의 대상이다.

휴스턴 씨는 훗날 함께 K2 등반에 나섰던 대원들에 대한 글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등반을 시작했지만 ‘형제’가 돼서 산을 내려왔다”며 이상적인 원정대 문화가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하지만 최근의 K2 사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의 원정대는 낯선 사람으로 등반을 시작해 낯선 사람으로 산을 내려온다.

모리스 아이저먼 미국 해밀턴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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