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철희]‘희망의 격차’ 줄여 준다면

  • 입력 2008년 8월 15일 02시 56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한 204개국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위대한 나라다.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고 1948년 건국한 후 전쟁과 독재를 이겨내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뤘다. 지금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다. 1950년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에 불과하던 한국이 2005년 1만6307달러에 이르는 나라로 성장했다. 1964년에 1억 달러를 겨우 돌파한 한국의 총수출액은 2006년 3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올해는 4300억 달러를 목표로 한다.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등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품목만도 26개나 된다. 지난 60년을 ‘기적의 역사’라고 불러도 과분하지 않다.

현 정부가 지향하는 선진일류국가를 만들려면 건국이념과 헌법정신을 잘 살려 나가야 한다. 헌법 1조가 명시하듯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아니다. 전체주의적 폭력과 사회주의적 획일주의를 부정하는 자유 민주질서의 확립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해방구를 차리듯 직접 민주주의적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세력은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그들은 자유와 권리는 주장하지만, 이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는 무시한다. 국가기관이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인민재판식 체벌을 가하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권력 신뢰와 위엄 살아나야

자유민주국가에서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폭력의 자유’는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폭력은 의사 표현의 방식이 아니라 자유의 부정이자 자기 독재다. 경찰에게까지 폭력을 가하고 멀쩡히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국가의 최소 기능은 질서 유지와 국민 안녕의 보장이다. 오죽하면 근대국가 탄생 이후 최소 개입 국가를 ‘경찰국가’라고 불렀겠는가? 좌우를 막론하고 폭력으로 자기의사를 표현하는 자들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공권력의 위엄과 그에 대한 신뢰가 살아나야 자유민주주의가 산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권력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를 통해 행사돼야 한다. 대의제가 원활해야 민주정치가 신명이 난다. 그런데 18대 국회는 임기를 개시하고도 70일도 넘게 국회를 공전시켰다. 대의정치의 책임 방기가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국회는 여론의 등 뒤에 숨기보다는 유권자의 민의를 수렴하고, 정부가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매섭게 책임을 추궁하고, 적극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질서의 유지와 대의제의 확립만으로 국민의 마음을 살 순 없다. 제헌헌법과 현행헌법은 똑같이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여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고 적고 있다. 한국민들은 식민지, 전쟁, 급속한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기득권을 부정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욕구가 다른 어느 국민보다 강하다. 하지만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 교육제도를 수백 번 바꿔도 1등과 꼴등은 있다. 세제와 부동산법을 수십 번 고쳐도 부자와 가난한 이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민은 열심히 노력하면 아파트 ‘평수’를 늘릴 수 있고, 돈이 없어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자녀들이 ‘등수’를 높일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갈구한다. 땀과 인내의 결과가 기회로 보상받는 구조가 그리운 것이다.

결과 아닌 기회의 평등 보장을

그런데 지금 많은 국민은 희망조차 잃어가고 있다. 국민에게 희망을 가지게 만들고,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벌어진 ‘희망의 격차’를 줄여주는 게 정부의 책무다. 쇠파이프를 든 폭력시위대가 아니라 시장상인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고소득의 ‘노동귀족’보다는 계약직과 청년 실업자들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정말 생활이 어려운 이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거리에 나서지조차 못한다. 힘없고, 돈 없고, 줄 없는 사람들의 권익 향상에 국가가 먼저 나서야 한다.

건국 60주년에 맞는 광복절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정부는 이념적 좌표를 굳건히 하고 당당하면서도 사려 깊게 정책을 추진해 가길 바란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