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그해 국민소득이 230달러로 한국(120달러)보다 두 배나 잘사는 나라였다. 박 대통령은 마닐라의 베트남 참전국 정상회담에 참석했는데 한국은 베트남 파병을 경제발전의 중요한 촉매로 활용하던 시절이었다. 한국은 1964년에 사상 최초로 국민소득 100달러를 넘겼지만 여전히 기아와 호구지책(糊口之策)을 걱정해야 하는 대표적인 최빈국이었다.
산업화-민주화 유례없는 성취
건국 60주년을 맞으며 한국은 어떻게 변했는가. 국민소득이 2만 달러로 200배, 수출입 규모는 3200배나 증가한 7300억 달러에 이르러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어떤 국제적 기준으로 평가해도 한국의 발전은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약적인 성과였고, 글자 그대로 한강의 기적을 실현했다.
그것도 전쟁의 상흔(傷痕)을 복구하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갈등을 극복하며 외환위기 이후의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며 이룩한 성과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구조적 한계가 어디 그뿐이었나. 북한과 대치하며 이념 갈등과 사회적 혼란이 끊이지 않았고 글로벌 시대의 치열한 경제 전쟁 속에서 거둔 결실이었다.
한국의 발전을 다른 나라와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더욱 화려해진다. 시간이 흐른다고 경제가 저절로 발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2008년 오늘 현재에도 전 세계 인류의 16% 내외는 하루 소득이 1달러 미만으로 1960년대의 우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류의 3분의 1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연명한다. 40년 전에 박 대통령이 부러워했던 필리핀 역시 소득이 1800달러에 미치지 못한다.
세계지도를 펴 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몇 개 나라를 제외하면 우리보다 더 풍요로운 나라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화까지 이룩한 나라를 찾으면 더욱 적어진다. 1960년대 이후 최빈국에서 분단의 시련을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나라를 찾는다면 단연코 한국이 유일하지 않은가.
한국인이여, 이제 올림픽 금메달에만 열광하지 말고 건국 60년의 역사에도 떳떳한 자부심을 갖자. 세계무대에서 우리가 당당히 어깨를 펴고 활보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많지 않은가. 최근 동아일보 조사에서는 국민의 64.9%만이 “한국의 역사가 자랑스럽다”고 평가했다.
긍정적 평가가 5개월 전보다 10%포인트나 높아졌고, 젊은 세대는 72.9%가 자랑스럽게 여긴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스스로 자기를 폄훼하고, 과거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떻게 미래를 향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겠는가.
건국 60년 폄훼 말고 자부심을
물론 한국이 앞으로 60년,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만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경제발전과 선진화의 그늘에서 생성된 양극화의 부작용, 아직도 지속되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도 해소해야 한다. 사회적 통합과 선진국다운 신뢰 기반의 구축은 물론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함께 시장친화적인 정책의 조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성공신화를 만들기 위해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 60년을 폄훼하는 자학이 아니다. 오히려 자부심을 갖고 온 국민이 선진화에 앞장서야 한다. 역사는 결국 노력의 산물이다. 누구라도 필리핀처럼 전락할 수 있고, 우리보다 앞서 성공할 수 있다. 과거 60년의 역사만으로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야 없지 않은가.
정갑영 연세대 교수·경제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