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전성철]북송 뒷북치고, 재판 훈수하는 인권위

  • 입력 2008년 8월 23일 03시 02분


“사정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 무리한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국가인권위가 북한 주민의 북송 문제와 관련해 무리한 결정을 내려 국가정보원 통일부 등 관계기관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인권위는 2월 초 연평도 부근에서 표류했다가 합동조사단의 조사를 받고 북송된 북한 황해도 강령 지역 주민 22명이 처형됐다는 소문에 대해 조사를 한 뒤 ‘북한 주민이 귀순을 원치 않으면 이를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언론에 공개하라’고 국정원에 권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취재 결과 인권위의 이 같은 권고는 그야말로 ‘뒷북치기’로 드러났다.

정부는 5월 대통령안보수석실 주도로 ‘북한 선박 월선 대응 매뉴얼’을 개정하면서 북한 주민이 귀순을 원치 않으면 이를 언론에 공개하는 것으로 규정을 이미 고쳤다.

이에 따라 통일부는 6월 26일 동해안에서 표류하던 북한 어부 김모 씨를 북측에 돌려보내면서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인권위가 국정원에 보낸 권고안을 결정한 7월 17일보다 20여 일 전이다.

인권위는 조사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22일 시인했다. 규정이 바뀐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도 결정문에서는 딴소리를 한 셈이다.

‘북송 주민의 신변안전 보장과 생사 확인 채널을 마련하라’는 현실성이 없는 권고를 받은 통일부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측과 (신변보장에 대한) 아무런 상의도 없이 무작정 북송을 하겠느냐”며 “하지만 그런 내용을 문서화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북한 주민의 생사 확인 채널을 확보하라는 것은 더욱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인권위가 비공개 인터넷 카페에 친북성향의 자료를 올렸다가 기소된 이들이 낸 진정에 대해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찬양·고무 규정 등이 모호하고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법원에 내기로 한 것도 논란을 빚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묻지도 않은 의견을 내겠다는 것은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냐”고 되물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인권선진국이라고 말하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많다. 그만큼 인권위가 지적하고 고쳐야 할 일이 많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리거나,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끼어드는 일이 잦으면 결국 스스로의 위상을 깎아내리고 결정의 권위마저 떨어뜨리는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성철 사회부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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