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은 순전히 필요 때문에 물건을 구입합니다. 하지만 사회가 풍족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제 ‘필요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제품을 구입합니다. 이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는 기능이 아니라 고객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 미래학자인 롤프 옌센 드림컴퍼니 최고상상력책임자(CIO·Chief Imagination Officer)가 한국 기업에 전한 메시지다. 옌센 CIO는 사회가 부유해지면서 고객들이 이성보다는 감성적 이유에서 구매 결정을 내린다는 내용의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이달 초 내한한 그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인터뷰를 갖고 “풍부한 꿈과 감성에 기초한 진실이 담긴 이야기로 소비자와 임직원을 독려하는 것이 최고경영자(CEO)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꿈’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10년 전에는 누구나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전화를 샀다. 하지만 지금 휴대전화는 전화를 걸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패션 액세서리다. 사람들은 기능 때문에 제품을 사지 않는다. 물론 드림 소사이어티 이론을 생필품조차 구입하기 힘든 가난한 나라에 적용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가난의 정의도 달라지고 있다. 필요해도 물건을 살 수 없었던 것이 과거 가난의 정의였다면 현대 사회의 가난이란 ‘단순히 기능, 필요 때문에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필요가 아니라 좋아서 제품을 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몇천 원짜리 플라스틱 가방과 수백만 원에 달하는 구찌 핸드백의 기능은 정확히 똑같다. 하지만 한쪽은 필요 때문에, 다른 한쪽은 꿈과 아름다움 때문에 핸드백을 산다.
미래 사회에서는 물건을 구입하는 방식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표출할 수 있다. 자신을 표출하는 방법이 독특해지고 다양해지는 것이 미래 사회다.”
―드림 소사이어티의 이상을 잘 구현한 기업과 경영자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등을 자주 언급했다. 다른 사례는 없나.
“미래지향적 비전을 가진 테마파크 산업을 꼽고 싶다. 덴마크의 해상 영웅(naval hero) 페테르 토르덴스쾰을 소재로 한 테마파크는 드림 소사이어티의 이상을 잘 구현했다. 이 테마파크의 훌륭한 점은 첫째, 역사와 문화를 테마파크의 소재로 삼았고 둘째, 지역 주민들을 테마파크 운영에 참여시켰다는 것이다. 역사만큼 훌륭한 스토리텔링은 없다. 1000명이 넘는 이 마을의 주민들은 테마파크에서 덴마크 민속의상을 입고 역할을 분담해 공연을 펼친다. 학습, 지역사회와의 교류, 돈벌이가 어우러진 셈이다.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팀도 드림 소사이어티의 이상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다. 선수(회사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적극적이고 소속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며, 팬(고객)을 고양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기업 내부에는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아이팟이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등 드림 소사이어티의 이상을 구현한 제품은 대부분 소비재다. 한국은 반도체, 조선, 철강 등 산업재 위주로 성장했는데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해야 하는가.
“조선업의 예를 들어보자. 배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떤 배를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과거의 배는 A에서 B로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동이 목적이 아닌 경우가 많다. 유람선은 A에서 출발해 다시 A로 돌아온다. 이런 시대에는 배를 만드는 데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고, 이 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이를 구입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경우 창업자에 관한 한 흥미로운 성공 스토리가 많지만 후대 경영인으로 내려갈수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기 어렵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간단하다. 창업주는 이익보다 비전을 우선시했다. 자신이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사업을 통해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후대 경영인들은 비전보다는 이익이나 주주들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그러다 보니 비전은 점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현대 기업에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CEO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기업의 비전과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고 직원들에게 이를 알려야 한다. 스토리텔링은 내부 홍보를 위한 매우 효과적인 도구다.”
―이야기를 통해 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이끌어 낸 기업의 사례를 소개해 달라.
“덴마크의 한 업체의 핵심 가치는 ‘열정(passion)’이었다. 하지만 이런 가치를 실천하는 직원은 매우 드물었다. 고민 끝에 이 회사의 CEO는 직원들에게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CEO 앞에 나타난 사람은 놀랍게도 조그만 안경점 직원이었다. 이 직원은 그의 친절에 감동받은 고객이 보낸 감사편지와 초콜릿 상자를 들고 있었다.
CEO는 당장 회사의 슬로건을 ‘초콜릿 상자를 찾아라(Go for the Chocolate Box)’로 바꿨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 것은 물론이고 외부의 평가도 매우 좋았다. 이 기업 사례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열정, 헌신, 정직 같은 판에 박힌 단어로는 공감을 줄 수 없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다.”
―제품 기능 대신 꿈과 비전을 팔라는 주장은 매력적이지만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 추구인데 무조건 비전만 추구하는 것이 위험하지 않은가.
“드림 소사이어티는 미래지향적 제안이다. 어떤 해답이나 균형점을 찾는 행위가 아니다. 다른 컨설턴트와 마찬가지로 나의 목표 역시 기업이 많은 돈을 벌게 하고 산업을 번창시키는 것이다. 재무적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 아니라 단지 목표를 향해 도달하는 방식을 다르게 알려줄 뿐이다. 나는 드림 소사이어티 이론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해인 탐욕(greed)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도 생각한다. 현대 사회는 인류가 처음으로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모두에게 여유가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물질적 욕구보다 감성적 욕구가 더 중요하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롤프 옌센은…
1942년생인 옌센은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미래학자로 덴마크 오르후스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덴마크 외교부, 국방부 등에서 근무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세계 최대 미래문제 연구단체인 코펜하겐 미래학연구소장을 지냈다. 전 세계 100여 개의 기업 및 정부기관의 전략부문 컨설팅을 수행했으며 유럽 미래학회의 자문위원을 맡아 미래 및 혁신 전략에 관한 보고서들을 발표했다. 캐나다와 크로아티아의 국가 전략 자문관도 지냈다. 1999년 출간한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가 큰 반향을 일으키자 2001년 기업 비전과 미래 전략을 컨설팅해주는 ‘드림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해 최고상상력책임자(CIO·Chief Imagination Officer)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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