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채무국이 되면 국가신용도가 떨어지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위험성이 커진다. 외채 규모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외채의 질(質)이다. 총외채 4197억 달러 가운데 만기가 1년 안에 돌아오는 유동외채가 2223억 달러에 이른다. 외환보유액 2475억 달러(7월 말 현재)에서 유동외채를 갚고 나면 252억 달러만 남는다. 더욱이 외환당국이 원화가치 안정을 위해 달러화 풀기를 포기하기 힘든 처지여서 외환보유액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세계 6위권의 외환보유액만 믿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외국인투자가들이 국내 주식 및 채권 시장에서 대규모로 자금을 회수하면서 7월 자본수지는 57억 달러 적자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12월 이후 10년 7개월 만에 최대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7월 경상수지 적자는 78억 달러나 되고, 서비스수지도 여름철 해외여행이 늘면서 적자폭이 커졌다. 외국인투자가들이 일시에 자금을 빼내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9월 위기설’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것은 달러화를 구하기 힘들어지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정부는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들이 영업활동을 위해 본점에서 들여온 자금까지 외채로 잡힌다는 점을 들어 통계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최근 가속도가 붙는 외채 증가 양상을 감안할 때 미리 손을 쓰지 않으면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괴물이 될 수 있다. 만성화 조짐을 보이는 경상수지와 서비스수지의 적자폭도 줄이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순채권국 시절에 도입했던 외환 관련 정책도 순채무국이라는 현실에 맞게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과도한 단기부채가 국가 부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1997년의 악몽을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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