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7시 35분경 앞을 못 보는 이 씨는 국철 1호선 금정역(경기 군포시)에서 병점행 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을 걷다 발을 헛디뎠다. 열차가 승객을 싣고 막 떠난 참이라 역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함께 외출을 다녀온 시각장애인 일행과 자원봉사자들도 서울에서 이미 헤어져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아이고, 어떡해. 사람이 떨어졌어.”
“역무원 좀 불러 봐요.”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언제 열차가 들어올지 모른다는 초조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주변을 더듬어가며 벽 쪽으로 기어갔다. 그리곤 플랫폼 위로 뛰어오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번에는 옆구리의 고통이 엄습했다.
그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과 허망함이 함께 몰려왔다.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생각났다. 9년 전 ‘장님 남편’을 견딜 수 없다며 아내가 집을 나간 일, 역시 장님인 할머니 손에서 아들이 힘겹게 자란 일, 어머니 가출 이후 온몸에 피멍과 부종이 생기는 스트레스성 자반증으로 8년간 투병한 일,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장학생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일….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플랫폼 아래 움푹 파인 곳에 웅크려 있던 이 씨는 구원의 손길을 느꼈다. 누군가 자신의 양발을 들더니 다른 한 사람이 어깨를 잡아 위로 들어올렸다. 맞은편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선로 위를 헤매는 이 씨를 보다 못해 뛰어든 시민들이었다.
이 씨가 플랫폼 위에 눕혀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는 커다란 경적을 울리며 선로로 들어왔다. 그때가 오후 7시 41분. 이 씨는 죽음의 철로 위에서 홀로 ‘지옥 같은 5분’을 보냈다.
그는 곧 공포에 꽁꽁 얼어버린 자신의 온몸을 주무르는 손길을 느꼈다. 어떻게든 고마움을 전하고자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이 씨에게 그들은 ‘얼굴 없는 천사들’이었다. 이들은 119구급대가 들것을 가지고 올 때까지 이 씨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이 씨는 “철로에 떨어져 있을 땐 세상에 나 혼자뿐인 줄 알았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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