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만 해도 해외 로밍을 해 온 휴대전화는 제 것밖에 없었는데 이번엔 여기저기서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저는 휴대전화를 반납하는 것이 귀찮아 올해는 로밍을 하지 않았는데 새로 나온 ‘신식’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들은 자동으로 로밍이 된다고 하네요.
정말 편리한 서비스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걱정이 됩니다.
통화요금이 꽤 나올 텐데, 저걸 다 누가 부담할 건가? 일단 딸아이에게 경고합니다. 》
“집에서처럼 쓰면 큰일 난다. 1분만 통화해도 2000원은 내야 하거든. 문자메시지도 한 통에 500원이야.”
딸아이가 화들짝 놀랍니다.
“어, 정말? 너무했다. 절대로 안 쓸게. 안 써도 상관없는데, 뭐.”
게다가 올해는 온갖 종류의 모기퇴치제가 등장했습니다. 모기향부터 스프레이형, 옷에 붙이는 스티커형, 손목에 감는 밴드형, 심지어 손에 쥐고 다니는 선풍기형 벌레퇴치제도 있습니다.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곳이다 보니 아이들마다 잔뜩 마련해 갖고 왔네요.
밖에 나갈 때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느라 난리입니다. 얼굴에 칠하는 것, 몸에 바르는 것, 물놀이할 때 바르는 것, 땀이 나도 지워지지 않는 것 등. 이렇게까지 발라야 하나 하면서도 저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햇볕을 가리는 모자, 선글라스, 장갑에, 눈밖에 안 보이는 거의 복면 같은 상품도 등장했습니다.
주위에 정말 상품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행복해졌나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많다 보니 챙겨할 것도 많아졌습니다.
여행을 하려면 당연히 모기약과 자외선 차단제를 챙겨야 합니다, 자동 로밍이 되는 휴대전화도 있어야 하고. 이제는 길을 물으면 내비게이터에 이름을 찍어보라고 답합니다. 내비게이터가 없다고 하면 의아해합니다. 너무나 당연히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되나 봅니다.
그런데 많은 걸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지지 않은 게, 아니 가지지 못한 게 또 나타납니다. 아무리 많아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언제쯤이면, 어떻게 하면 상품의 소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결국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는 것이 상품의 소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어컨이 없었으면 어땠을까요? 안 틀고도 잘 살았을 텐데요.
여름이면 에어컨을 끼고 살던 남편이 유난히도 더웠던 올여름에는 작심한 듯 에어컨을 안 켜고 버텼습니다. 물론 자기 방의 에어컨이 고장 난 탓도 있었지만 안 고치고 지내겠다고 했답니다. 기특하게도.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
※‘여정성 교수의 소비일기’는 이번 회를 끝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회부터는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이 금융교육을 주제로 칼럼을 기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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