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명의 젊은 창업가가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에서 활발히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번뜩이는 아이디어, 추진력, 활동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굴지의 대기업 창업자들의 공통적인 미덕이 인내와 끈기라는 점을 쉽게 간과한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6·25전쟁 탓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뒤 근성으로 버티며 다시 일어났던 일,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이 120배의 물가상승으로 고령교 공사에서 엄청난 적자를 보면서도 신용 하나로 다리를 완성했던 일은 점차 잊혀지고 있다. 대기업은 취업지망생들에게는 접근하지 못할 먼 나라의 왕국일 뿐이며, 젊은 창업자들에게는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터뜨린 로또일 뿐이다. 젊은 층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반(反)기업정서, 그리고 한탕주의는 모두 이유가 있는 것이다.
창업자의 인내-끈기 전파해야
대기업에 이러한 젊은 세대를 위한 사회적 투자를 하라고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두 가지 정책을 내놓는다. 첫째는 고용을 늘리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해외 탐방을 보내주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층은 김대중 정권 이후로 누적돼 온 청년실업 탓에 대기업의 고용 확대 방침을 믿지 않는다. 이미 세계에서 경쟁하는 대기업이 불필요한 인력을 억지로 채용할 수 없다는 정도는 다들 알고 있다. 또한 해외 탐방은 워킹홀리데이, 자원봉사, 어학연수, 배낭여행 등으로 세계로 나가는 데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감동을 주는 투자가 아니다.
최근 이명박 정부와 대기업은 미묘한 갈등을 겪고 있다. 정부는 기업이 원하는 것을 다해주었으니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일자리 창출에 나서라 하지만, 대기업은 세계시장 자체가 불안한 상황에서 선뜻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주문과 기업의 대응,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럼 일단 작지만 의미 있는 제3의 길이라도 찾아보면 어떨까.
손정의펀드는 2006년 한국인터넷기업을 대상으로 ‘수색펀드’를 조성했다. 당장의 수익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의 인터넷기업에 투자하여 인터넷경제의 판도를 ‘수색’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손정의펀드는 ‘수익률은 검증되지 않았으나 시장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태터앤컴퍼니, 태그스토리 등 웹2.0형 기업에 투자했다. 설사 투자가 실패한다 해도 한국 인터넷의 방향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이렇게도 한번 상상해 보자. 삼성과 현대 같은 대기업에서 창업자 이름을 딴 펀드를 조성한다. 펀드 규모는 기업당 100억 원씩만 해도 30대 기업을 합치면 3000억 원이다. 이 펀드를 차세대 이병철, 차세대 정주영을 키우기 위하여 젊은 창업가들에게 투자해 보자. 단, 투자만 하고 모른 척하지 말고, 대기업 창업자의 경영이념과 같은 정신적 유산까지 공유하며 진정한 기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한 대기업의 해외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세계시장 진출도 지원해야 한다. 한 창업회사에 10억 원꼴로 투자한다면 30대 대기업이 모두 300개의 젊은 기업을 키울 수 있다. 이런 선택받은 300개 기업이 다른 젊은 창업가들을 선도할 것이며, 창업시장은 급속히 활성화되고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다.
대기업, 젊은 창업가에 투자를
대기업으로서는 창업정신을 젊은 세대에 널리 알릴 수 있고, 반기업정서를 해소하며, 지긋지긋한 고용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손정의 수색펀드의 사례처럼 미래세대와 미래시장의 판도를 예측할 수 있다. 젊은 기업가들이 대개 인터넷, 모바일, 인터넷TV(IPTV), 대중문화 등 신규시장에 진출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제조업이라고 신규시장의 발달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LCD TV가 IPTV 및 대중문화시장과 관련이 있듯이 말이다.
국내외 경제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젊은 기업가들의 성장도 정체되어 있다. 한국 현대사의 자랑스러운 자산인 대기업 창업자의 근성과 인내를 오늘에 되살려 함께 뛰어야 한다. 아무리 여건이 어렵다 해도 10명의 이병철, 10명의 정주영만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경제, 뭐가 문제겠는가.
변희재 객원논설위원·실크로드CEO포럼 회장 pyei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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