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식]외환銀매각 둘러싼 ‘거물들의 진실게임’

  • 입력 2008년 9월 3일 02시 57분


요즘 서울중앙지법에서 한창 진행 중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사건 1심 재판은 근래에 보기 드문 ‘거인들의 재판’이다.

피고인은 전직 재정경제부 실세 국장과 대형 시중은행장이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고법 부장판사 출신 중견 변호사가 각각 창과 방패 역할을 맡아 한 치 양보 없는 유무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건의 요지는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이 외환은행을 비공개 수의계약 방식으로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싸게 팔면서 최대 8253억 원의 업무상 배임을 저질렀다는 것. 사상 초유의 배임액수에다 ‘스타플레이어’들의 공방으로 법정은 늘 방청객으로 북적댄다. 여기에다 1일과 2일에는 경제관료로서는 최고봉의 자리에 올랐던 전직 경제부총리 두 명이 차례로 증인으로 나와 엇갈린 진술을 하면서 진실 게임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2002∼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경제부총리를 차례로 지낸 전윤철 전 감사원장과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두 주인공. 이들은 당시 정부가 인수 자격이 모자란 투기성 자본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급하게 넘길 만큼 대내외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는지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드러냈다.

1일 법정에 나온 김 의원은 “2003년은 카드채 부실 등으로 경제가 위기인 상황이라 자본이 취약한 외환은행을 빨리 팔지 않았으면 부도가 났을 것”이라며 “은행 부실이 시장에 알려져 금융권에 혼란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비공개로 매각을 추진했다”며 변 전 국장을 옹호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2일 전 전 원장의 말은 달랐다.

“외환은행은 당시 국책은행들이 43%의 지분을 갖고 있어 부도가 날 정도로 위험하지 않았고 경제 상황도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였다. 국유재산법상 공개경쟁 매각방식을 적용해 가장 높은 가격을 써 낸 곳에 팔았어야 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전 전 원장의 상황 인식이 안이하다”고 반박했고, 검찰 측은 “김 의원의 진술에 위증의 소지가 있다”며 재신문까지 요청했다.

비슷한 시기의 경제 상황을 놓고 두 전직 부총리가 엇갈린 견해를 내놓자 방청객은 물론 재판부까지 어리둥절해했다.

물론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에 대한 해석과 전망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대내외 상황과 경제 수치는 속일 수 없을 것이다.

재판부로서는 피고인의 유무죄뿐만 아니라 두 전직 부총리의 견해를 어떤 식으로든 평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번 재판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생긴 셈이다.

이종식 사회부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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