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전직 재정경제부 실세 국장과 대형 시중은행장이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고법 부장판사 출신 중견 변호사가 각각 창과 방패 역할을 맡아 한 치 양보 없는 유무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건의 요지는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이 외환은행을 비공개 수의계약 방식으로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싸게 팔면서 최대 8253억 원의 업무상 배임을 저질렀다는 것. 사상 초유의 배임액수에다 ‘스타플레이어’들의 공방으로 법정은 늘 방청객으로 북적댄다. 여기에다 1일과 2일에는 경제관료로서는 최고봉의 자리에 올랐던 전직 경제부총리 두 명이 차례로 증인으로 나와 엇갈린 진술을 하면서 진실 게임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2002∼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경제부총리를 차례로 지낸 전윤철 전 감사원장과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두 주인공. 이들은 당시 정부가 인수 자격이 모자란 투기성 자본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급하게 넘길 만큼 대내외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는지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드러냈다.
1일 법정에 나온 김 의원은 “2003년은 카드채 부실 등으로 경제가 위기인 상황이라 자본이 취약한 외환은행을 빨리 팔지 않았으면 부도가 났을 것”이라며 “은행 부실이 시장에 알려져 금융권에 혼란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비공개로 매각을 추진했다”며 변 전 국장을 옹호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2일 전 전 원장의 말은 달랐다.
“외환은행은 당시 국책은행들이 43%의 지분을 갖고 있어 부도가 날 정도로 위험하지 않았고 경제 상황도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였다. 국유재산법상 공개경쟁 매각방식을 적용해 가장 높은 가격을 써 낸 곳에 팔았어야 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전 전 원장의 상황 인식이 안이하다”고 반박했고, 검찰 측은 “김 의원의 진술에 위증의 소지가 있다”며 재신문까지 요청했다.
비슷한 시기의 경제 상황을 놓고 두 전직 부총리가 엇갈린 견해를 내놓자 방청객은 물론 재판부까지 어리둥절해했다.
물론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에 대한 해석과 전망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대내외 상황과 경제 수치는 속일 수 없을 것이다.
재판부로서는 피고인의 유무죄뿐만 아니라 두 전직 부총리의 견해를 어떤 식으로든 평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번 재판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생긴 셈이다.
이종식 사회부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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