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원명]서울시 청사 꼭 보존해야 하나

  • 입력 2008년 9월 4일 02시 59분


서울시청 공사를 놓고 문화재 보존 방법에 대한 의견 차로 갈등이 고조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먼저 시청의 역사를 통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 서울시청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 일본인이 설계하고 시공하여 1926년 건립된 뒤 80년 넘게 사용됐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상 4층에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이다. 문제가 되는 건물은 본관 건물(보존 및 복원)이 아니라 본관 안쪽에 덧붙인 형태의 별도 회의실이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태평홀’인데 정밀 안전진단 결과 D, E급 판정이 나와 보완이 시급한 건물로 알려져 있다.

건축학적 측면에서 1920년대 건립 당시 모습과 기술이 아직도 남아 있어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건축물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최근 ‘등록 문화재’에서 ‘사적 가(假)지정’으로 문화재위원회가 지정해 해체 작업이 중단됐는데 문화재로서의 시청 건물과 위치(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잘 보존할 수 있다면 당연히 유지해야 하지만, 건물이 훼손되거나 없어져서 단지 터로 남아있다 해도 역사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도 500년 가까이 유지됐던 한성부는 오늘날 교보빌딩 북쪽에 위치한 정부통신부 자리였지만 조선조 말(1865년) 대원군 때 이전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9차례나 이전한 끝에 10번째로 옛 경성일보 자리에 위치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건물에만 너무 집착하는 모습도 그리 큰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시청 원래의 모습 내지 위치로 복원한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현재로는 불가능하므로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시청 건물과 터는 일제강점기에 시작했지만 수도 서울에서 차지하는 위상으로 볼 때 상징적인 의미가 커서 청사의 개축이나 이전 문제가 어렵게 진행됐다. 1993년 정도(定都)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시청 건물을 현 위치에 새로 짓는 것으로 결정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전 후보지로 1960년대 여의도를 처음 거론한 뒤 결국 지금 위치에 재건축하기로 했으니 40년 만의 결정인 셈이다.

시청 본관 건물이 보존(복원)되어 중앙홀을 지나서 12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을 조성하고 태평홀을 우측으로 이전 복원한다면 행정 위주의 관공서 건물이 아니라 시민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일반 시민의 기대가 크다.

최근 중국을 답사하면서 넓은 영토보다도 문화를 상품으로 새롭게 내놓는 점이 부러웠다. 베이징 만리장성에 끝나지 않고 이제는 문화적인 내용까지 수준 높게 재현한다. 공자(孔子)를 주제로 하는 대형 뮤지컬 공연이라든가 취푸 공자묘의 관광지화 노력은 부러울 정도다. 역사적 유물과 유적을 보존하는 데 머물지 않고, 박제된 형태의 엄숙한 보존에서 벗어나 현재와 더불어 호흡한다는 면에서 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셈이다.

멀리는 한성백제의 2000년 역사 유적 도시로서, 가까이는 600년이 넘는 수도 서울의 역사성은 시청 건물 하나 더 보존하는 문제로 좌우되는 곳이 아니다. 삼각산과 북악산이 에워싸고 한강이 감싸 안은 천혜의 수도 서울은 건물을 포함한 전체로서 인식할 때 역사성이 더 다가오지 않을까?

이제 우리도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뮤지컬 ‘세종대왕’과 ‘명성황후’를 새로 지은 시청 이벤트홀에서 공연한다면 시민과 함께하는 새로운 문화시대의 모습이 될 것이다. 여기에 ‘문화재 보존’의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본청 건물을 둘러싼 논쟁은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생산적 과정이어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평소 강조해온 ‘문화시정’ 의지로 철거 논쟁을 지혜롭게 이기고 서울시 청사를 고급 문화공간으로 시민의 품에 돌려주길 바란다.

이원명 서울여대 사학과 교수·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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