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진영]근무시간 줄고 임금은 그대로…현대車의 역주행

  • 입력 2008년 9월 4일 02시 59분


현대자동차 노사가 3개월 이상 임금 협상을 끌어오다 2일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올해는 극단적인 노사 대립이 없었고 파업기간도 나흘에 그쳐 파업이 있었던 해 중에서는 생산손실이 가장 적었던 점 등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협상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잠정합의안을 요약하면 ‘일하는 시간은 줄이고 월급은 삭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금 부분은 기본급 8만5000원 인상에 성과금 300%와 일시금 300만 원 지급으로 마무리됐다. 일을 덜 하고도 월급이 깎이지 않으니 근로자로서는 우선은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생존 경쟁이 치열한 세계 자동차 업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마냥 환영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울산상공회의소도 잠정합의안이 나오자 “후진적 노사 문화로는 국제경쟁력에서 밀리고 생존 자체도 위협받는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하루에 근무시간이 3시간 줄어드는데 과연 생산량을 종전처럼 유지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현대차 노사는 공장 간 생산 물량과 인력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방법 등으로 생산성을 높여 연간 생산량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차가 안 팔려 생산량이 적은 조립라인의 작업자를 빼내 일손이 달리는 다른 라인에 배치하거나, 잘 팔리는 차종의 생산을 일손에 여유가 있는 공장으로 확대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앞뒤는 뒤바뀐 것으로 보인다. 작업 시간이 줄어들었다면 그에 맞게 임금을 줄인 뒤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보고 임금을 올리는 게 순서다.

회사 측도 처음에는 정상근무와 잔업을 포함해 2교대 20시간 근무체제를 16시간으로 4시간 줄이자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 임금 삭감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하지만 노조가 부분파업을 하는 등 회사 측을 압박하자 기존 근무보다 3시간 줄어든 하루 2교대 17시간(오전조 8시간+오후조 9시간)으로 노조의 주장을 수용했다. 협상 초기에는 ‘노조의 무리한 주장을 받아주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협상이 길어지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현대차적인 교섭 행태’를 되풀이한 것이다.

현대차는 한국 노사 문화의 후진성을 상징하는 기업으로 자주 거론된다. 이 회사 노사의 역주행은 과연 언제쯤 멈춰질까.

황진영 산업부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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