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갓 입학한 이른 봄 학생회관 벽에서 본 한 서클(동아리) 소개 벽보의 문구가 생각난다. 그 문구가 마음에 들어 가입한 친구도 많았고, 그중 상당수가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의 거대한 격랑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여기서 ‘운동’은 체육활동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한 활동, 즉 에너지를 조직적으로 투입해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는 목적지향적인 활동을 뜻한다.
그 후 학생운동, 노동운동처럼 여럿이 하는 것만이 운동의 전부는 아니며, 만약 어떤 목표를 향해 자신의 생활을 설계하고 노력한다면 그 역시도 ‘운동’이란 걸 깨닫게 됐다.
지난주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의 대형 풋볼경기장,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연설을 듣던 순간 그 ‘운동’이란 단어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른 동료들은 8만4000여 청중이 열광하며 발을 구르는 바람에 경기장 스탠드가 무너질까 봐 걱정했다던 그 순간에 자꾸 50년 전 아프리카 케냐 빈민가의 한 청년이 떠오른 것이다.
1950년대 후반, 영국 식민지 케냐 나이로비 근교에서 염소를 치고 하급직 일을 하던 20대 초반의 청년 버락 오바마 시니어에겐 꿈이 있었다. 넓은 세상, 세계의 중심에 가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이루기 위해 그는 ‘운동’을 했다.
나이로비를 찾은 미국인 교육가에게 간청해 추천서를 받았고, 매일 밤을 새워 미국의 대학들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마침내 하와이대 장학금 프로그램이 열렸다.
물론 그의 열망이 혼자만의 힘으로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인 재키 로빈슨, 흑인 명배우 시드니 포이티어 등은 사재를 털어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을 위한 장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케네디 가문도 아프리카의 수재들을 유학시키는 장학사업에 나섰다.
그 후 50년이 지난 지금, 그 케냐 청년과 하와이대 러시아어 수업에서 만난 백인 여학생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미국 다수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후보 수락 연설에 앞서 방영된 동영상 메시지에서 오바마 의원은 어머니를 회상했다.
“어머니는 한없이 인자했지만 결코 용서를 해주지 않을 때가 있었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거나, 그런 걸 보고도 못 본 체했을 때였다.”
그 어머니는 매일 오전 4시에 어린 아들을 깨워 영어를 가르치고, 퇴근할 때 민권운동 지도자들의 책을 사오곤 했다.
꿈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운동’의 결과물인 최초의 흑인 대선후보는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고 연설한 지 45주년이 되는 날,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미국의 꿈’을 약속했다. 경이롭게 느껴지는 선순환 사이클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그냥 물살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갈 것인지, 꿈을 향해 물살을 거슬러 헤엄을 칠 것인지 선택하는 분기점을 만나지 않을까.
26세 때 케냐로 뿌리 찾기 여행을 간 청년 오바마는 아버지가 미국 대학에 보내기 위해 쓴 편지 초고 뭉치에서 ‘꿈을 향해 몸부림친 한 청년의 흔적’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의 편지들은 ‘유리병에 넣어 띄워 보낸 쪽지’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미국행 배에 오른 순간 아버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름 그대로 ‘신의 축복’을 느끼지 않았을까.”(버락은 ‘신의 축복’이란 뜻이다.)
여러 사람이 각자의 꿈을 담아 띄워 보낸 유리병들이 한 물줄기에 닿아 50년 뒤 역사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옆구리에 달린 지느러미를 잊지 않고 헤엄쳐간 사람들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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