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전교조 대변인 사퇴가 뜻하는 것

  • 입력 2008년 9월 11일 02시 58분


현인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이 결국 물러났다. 그는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전교조가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방침만을 고집해서는 안 되며 학부모 단체 등 교원평가에 찬성하는 이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내부 역풍을 맞았다. 전교조가 극력 반대하는 ‘교원평가’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이상 그냥은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현 대변인의 퇴진은 1989년 5월 전교조 창립 이후 20년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변해 온 전교조의 오늘을 상징한다.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그렇다.

우선 전교조 내부에도 다른 목소리가 담 밖으로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전교조는 우리나라 노조 중에서도 특이한 존재다. 조합원 전체가 대졸 이상으로 균질한 노조는 전교조가 유일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비밀유지와 행동통일이 확실하다. 웬만한 단체의 집회 일정을 사전에 알아내는 데 귀신같던 경찰도 합법화 이전의 전교조한테는 두 손을 들었다. 어느 누구도 ‘정보’를 흘리는 법이 없었다. 기자도 대의원대회처럼 중요한 집회를 취재하려면 장소도 모른 채 일대일로 조합원을 만나 안내를 받아야 했다. 대회장에 들어갈 때는 끝날 때까지 밖으로 나가거나 외부와 연락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이런 일사불란함 때문에 전교조 내의 ‘다른 목소리’는 쉽게 묻혀 버렸고, 일단 의견통일이 되면 그에 이르는 과정은 베일 속으로 사라졌다. 현 대변인의 퇴진을 둘러싼 전교조 내부의 설왕설래는 그런 ‘전통’이 더는 유지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전교조가 반대 측을 공격하는 논리가 이율배반적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현 대변인은 자신의 발언이 ‘사견’이라고 밝혔는데도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조직의 입인 대변인이 공적인 역할과 개인의견을 혼동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게 직무정지의 이유다. 일견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런 논리가 존중받으려면 전교조도 앞으로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나 교육감에게 ‘부당한 소신’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장관이나 교육감이 ‘사견’이나 ‘소신’을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그들의 발언이나 의견이 전교조의 노선에 맞지 않으면 ‘정권에 코드를 맞춘다’거나 ‘소신이 부족하다’며 몰아세운다. 전교조가 현 대변인의 발언을 묵인할 수는 있어도 정부가 장관이나 교육감의 ‘엇박자’를 감쌀 수는 없다.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정치 조직화했다는 증거도 감지된다. 현 대변인의 퇴진에는 올 연말에 있을 위원장 선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현 대변인을 보호하려 할 경우 다음 선거에서 위원장자리를 노리는 강경파가 집행부를 흔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교조는 ‘초심’을 잃은 것이다. 전교조는 창립선언문에서 “우리의 교직원노동조합은 민주시민으로서 자라야 할 학생들에게 교원 스스로 민주주의 실천의 본을 보일 수 있는 최선의 교실”이라고 했다. 전교조는 지금도 ‘최선의 교실’인가. 오로지 학생을 운동의 중심에 두겠다는 창립선언문의 취지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학생과 참교육이 있어야 할 자리는 이미 전교조의 조직이기주의가 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가 조합원의 계속적인 이탈이다. ‘교원 평가’를 둘러싼 전교조의 의견 대립은 전교조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전교조가 무엇을 위해 탄생했고,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조직의 존재의미 다시 생각할 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촛불집회에 참석한 학생을 체벌했다는 오해를 받고 전교조 징계위에 회부된 경기상고 이영생 교사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전교조를 탈퇴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현인철 대변인 같은 핵심간부도 개인의견 때문에 사표를 내는 마당에 일개 조합원인 나는 어떻겠느냐. 전교조는 더는 개선 가능성이 없다.”

‘일개 조합원’이 모인 게 노조다. 한솥밥을 먹던 식구조차 정을 떼는 노조의 앞날은 어둡다. 앞날이 어둡다는 사실조차 외면하는 단체의 앞날은 더욱 어둡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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