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주흥]부패와의 전쟁 포기할 수 없다

  • 입력 2008년 9월 11일 02시 58분


최근 아시아에서는 부패 문제로 나라마다 시끄럽다. 태국 시위대는 독재보다 부패가 더 큰 문제라면서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고 헌법재판소는 공직자 겸직을 금지한 헌법을 위반했다며 총리직 사퇴를 명했다. 대만에서는 한때 ‘미스터 클린’이라 불렸던 전 총통이 부패의 화신으로 전락했다. 한국에서는 시의 투명성을 감시하는 시의회의 의장후보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전체 시의원의 4분의 1이 넘는 28명이 무더기로 기소되는 한편, 경찰이 성매매업소에 대해 강력하게 집중 단속을 하자 업주들은 성 상납 경찰관의 명단을 폭로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뇌물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활개를 치는 이유는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고 흔적을 남기지 않아서 혐의자를 발견하고 유죄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법망에 걸려들면 본인의 운명은 천지개벽을 맞게 된다.

추석이 다가오는 이맘때, 재판받는 피고인이나 가족은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많이 제출한다. 엄마는 어린 자녀에게 아빠가 뇌물을 받고 수감돼 있다는 치욕적인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 중이거나 해외 출장 중인데 추석에는 돌아온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고는 재판부에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제발 아빠를 집으로 보내 달라고 애원한다. 처절할 정도로 뼈저리게 후회하는 피고인과 하루아침에 나락에 떨어진 막막한 처지의 가족에게서 급격히 무너져 내리는 가정의 몰락과 해체를 목도한다.

무기력-패배감 털고 맞서 싸워야

그 사이 우리도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정보공개 등 부패 근절을 위한 노력을 한다고 했다. 법원에서는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요구하거나, 뇌물 수수의 경위 수법이 구조적 지속적인 면을 보일 때에는 뇌물액수가 낮더라도 과감하게 실형을 선고하는 경향을 보이는 등 뇌물 양형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하지만 우리에게 부패는 삶의 한 부분인 양 체질화된 생활 형태적 측면이 여전히 남아 있다. 사회 전체에 광범위하게 퍼진 부패의 수렁에 빠져 무기력감과 함께 아예 체념하고 싶은 심정까지 든다. 그러나 이런 패배의식이야말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부패와의 전쟁은 멀고 지루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유럽에서 부패인식지수가 가장 높아 깨끗하다는 핀란드에서는 일반인에게 공적 정보에 대한 접근이 대부분 허용되면서 그것이 가장 유효한 부패방지수단이 됐다고 한다. 부패는 정보의 독점과 왜곡, 은폐에 맞닿아 있어 양지에서는 싹트기 어렵다. 공직자가 자신의 의사결정과 집행에 대해 정보 개방이 이뤄질 것을 염두에 둘 경우 어찌 부패의 손놀림을 가볍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점에서 정보공개를 통한 투명성 확보야말로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최상의 방부제라 할 수 있다. 행정이나 정치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 특히 회계 분야에 있어서도 투명성의 확보와 제고가 이뤄져야 한다.

아시아에서 ‘청정국가’로 꼽히는 싱가포르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공직 수행에 있어서 엄격한 도덕적 수준을 요구한 정치지도자 리콴유 의 강력한 의지와 이를 지탱하게 해주는 공무원에 대한 파격적인 우대, 그리고 뇌물에 대한 가차 없는 엄벌이라는 병행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 우리도 우수한 공적 봉사자가 업무 수행에 있어 국가와 사회를 최우선 순위에 두게 하기 위해서는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급여 수준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 반면에 부패는 재물에 대한 탐욕에서 출발하므로, 능동적 적극적 뇌물 요구나 매수시도에 대해서는 엄청난 재산적 손실을 가져오도록, 필요적 벌금병과를 제도화해야 한다.

공적 정보 공개-뇌물수수 엄벌을

우리의 가장 불행한 추억은 독재와 부패인데 이제 독재는 물러났지만 부패는 여전하다. 부패 방지는 진부한 주제지만 21세기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의 시급한 현안이다. 사회 환경 여건을 반부패적 분위기로 만들도록 계속 주의를 환기하면서 경고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후손에게 부패공화국의 부정적 이미지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부패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환경에서 일상적인 동반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배척하고 부패가 펼쳐질 기회가 없는 문화와 관습을 만들어야 한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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