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경숙]모두 보름달처럼 둥글어지길

  • 입력 2008년 9월 13일 01시 53분


나만이 그렇게 느낀 것일까. 올해는 추석이 다가오는데도 유난히 추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신문을 보면 다가오는 추석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명절이 다가오는지 어쩌는지도 모를 지경으로 추석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추석이 추석같지 않은 이유

추석 1주일 전쯤이면 성묘를 하러 가거나 벌초를 하러 가는 사람 얘기를 자주 듣곤 했었던 것 같은데 나만 그런 것인지 올핸 그런 사람을 주변에서 만나지를 못했다. 그래서 나마저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깜박 잊고 지냈다.

엊그제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택배 배달원이 서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상자를 들여놓은 그가 내미는 영수증 종이에 사인을 한 뒤 누가 보냈나 살펴보니 큰오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잘 익은 붉은 사과와 역시 잘 익은 노란 배가 반씩 섞인 채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때까지도 큰오빠가 왜 이런 걸 보냈지? 싶었다가 나란히 놓여 있는 과일을 보자 한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 내리사랑이라더니 명절이 다가왔다고 동생네에게 과일을 보내는 오빠라니. 나는 오빠네에게 과일은커녕 전화 한 통 하지 않은 처지였다. 큰오빠네에게 과일을 받고나서야 아, 추석이 다가오는구나, 실감하며 그제야 나도 늙으신 시골 부모님이며 오래 못 만난 친구며 식구가 많은 동생네를 챙기는 마음이 생겨 전화도 하고 뭘 보내기도 하고 그랬다.

올해 유난히 이토록 명절이 실감나지 않은 것은 갈수록 나빠지는 경제 사정과 하루 한시도 편할 날 없었던 지난 봄, 여름날 때문일 것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을 맨 앞에 내세운 분을 대통령으로 맞이했으나 살기가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사람을 만나볼 수가 없는 것도 나만의 일일까?

광우병 파동으로 온 나라가 벌집 쑤셔 놓은 듯 들끓었던 날을 겪고 난 지금은 어쩐지 내 보기엔 사람들 마음이 딱 둘로 나누어진 것 같다. 어떤 사회든 분열이 있겠고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겠으나 요즘의 분열이 내게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서로 소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각자 다른 견해를 갖고 있어도 상대방의 생각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소통의 기미만 있으면 올바른 방향을 찾아 변화가 이뤄지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의 눈엔 오늘날의 우리 사회 현실이 몰고 온 분명한 이분법이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진다.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한다, 싶으면 아예 그 곁으로 가려고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던 마음도 명절 앞에서는 물처럼 풀어졌던 것 같은데 올해는 그것도 아닌 듯싶다. 모든 일은 연쇄적으로 서로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는 법 아닌가. 마음이 팍팍해지다 보니 명절 때라도 찾아보곤 하던 어려운 사람을 향하던 발길도 눈에 띄게 뜸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명절이 다른 날보다 더욱 쓸쓸한 날이 되기 마련이다.

닫힌 마음 조금씩 열렸으면

추석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뜬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라는 말을 우리는 보름달을 보면서 실감한다. 우리가 명절이 찾아왔음을 느끼지 못할 만큼 분열된 마음으로 살고 있어도 올 추석에도 둥근 보름달은 구름을 뚫고 휘영청 떠오를 것이다.

추석에 뜨는 보름달처럼 변하지 않고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은 가족이기도 하다. 모처럼 고향에서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기회도 생각해 보면 명절이 제공한다. 어쩌면 마음이 힘드니 더욱더 가족을 찾아가는 사람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을 만큼 분열된 마음일 때 찾아온 추석이 우선은 가족과 많은 대화를 할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러고 난 뒤엔 보름달처럼 닫힌 마음도 조금씩 다시 열려 둥글어지기를.

신경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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