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에겐 축복 기존업체엔 큰 위협
어느 날 갑자기 냉장고나 자동차를 공짜로 주겠다는 전화가 걸려온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유럽의 가전 기업인 보슈-지멘스는 올해 7월 브라질 빈민들에게 최신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 준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벤처 기업인 베터플레이스는 이스라엘에서 2011년을 목표로 차세대 전기자동차의 무료 보급 사업을 추진 중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17호(9월 15일자)는 최근 등장하고 있는 ‘공짜경제(Freeconomics·Free+Economics)’ 트렌드를 집중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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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짜경제의 등장 배경
공짜경제란 △과거 유료였던 제품, 서비스를 무료 또는 사실상 공짜로 제공하고 △그 대신 대중의 관심과 평판, 광범위한 사용자 기반을 확보해 △이를 바탕으로 관련 영역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방식이다. 공짜경제의 개념은 롱테일 경제의 주창자인 크리스 앤더슨 씨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2008년 세계경제 대전망’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로 소개하며 알려졌다.
공짜경제가 등장한 첫 번째 이유는 소비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공짜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원적인 심리이며, 특히 최근 세계 경기 하강으로 실질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이런 심리가 더 강해졌다. 둘째, 기술 진보에 따른 한계비용 감소도 원인이다. 반도체와 통신기술의 지속적 발전으로 인터넷 업계에서는 가입자 한 명의 증가에 따른 한계비용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까워져 공짜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셋째, 가장 주목해야 할 원인은 희소 자원의 변화다. 경영학자 토머스 대븐포트 씨는 글로벌화와 정보화의 급속한 진행에 따라 기업이 선점해야 할 핵심 자원이 ‘토지, 자본, 노동’에서 ‘고객의 관심, 시간, 평판’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짜경제 사업 모델은 유사제품과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고객의 관심과 시간, 평판을 획득하는 데 있어 아주 매력적인 방법이다.
공짜경제 트렌드는 소비자에게는 더없는 축복이지만, 기존 기업에는 큰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공짜 또는 사실상 무료에 노출된 소비자들은 더는 정상적인 가격을 지불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공짜경제, 콘텐츠와 통신 산업으로 확산
공짜경제 사업 모델은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속속 나타나고 있다.
영국 음반 업계는 지난해 8월 충격에 휩싸였다. 1980, 90년대 팝 음악계를 주름잡았던 가수 프린스가 데일리메일 신문 일요판에 신작 앨범을 끼워 공짜로 배포했기 때문이다. 프린스는 이를 통해 런던 콘서트 투어의 홍보를 노렸고, 실제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공짜로 배포한 CD 300만 장의 인세(560만 달러)는 날렸지만, 콘서트 매진으로 2340만 달러의 입장료 수익을 얻었다.
통신 분야에서도 공짜경제 사업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영국 블릭은 무선통신 분야에서 광고 기반의 공짜 통화 모델을 실험 중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휴대전화로 배달된 광고메일을 보고 설문조사에 응답하면 무료통화를 준다. 블릭이 지난해 9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광고 수신자가 10만 명, 광고 응답률이 29%에 이르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공짜경제 사업 모델은 전통 산업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대학가에서는 최근 게이오대 학생들이 설립한 타다카피란 공짜 복사 서비스가 인기다. 타다카피는 대기업이나 학교 근처 사업자들의 광고를 복사용지 뒷면에 실어 수익을 올린다. 학생들은 공짜로 복사해서 좋고, 광고주들은 ‘광고전단’을 학생들이 오래 간직하게 되어 좋아한다.
○ 공짜경제, 어디에서 나타날까
공짜경제 모델은 앞으로 2, 3년간 전 세계적으로 경기 침체가 심화하면서 더욱 힘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다음 4가지 산업 분야에서 활발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첫째, 강력한 대체재가 나타난 산업(음악, 신문, 방송 등 미디어 분야)이다. 현재 인터넷은 강력한 대체재로서 미디어 산업의 수익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미디어 기업들은 일반 콘텐츠는 공짜로 주고, 새로운 경험(음악), 풍부한 상호작용(방송), 정제된 지식과 통찰력(신문) 등을 충족시키는 보완재에서 수익을 창출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둘째, 고정비가 크고 한계비용이 적은 산업(항공, 통신, 인프라)에서도 공짜경제 출현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사업은 서버, 스토리지, 통신 장비 등 초기시설 투자비용이 매우 크지만 일단 인프라만 구축되면 한계비용 증가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할 여지가 생긴다.
셋째, 시장이 크고 성숙되었으며 특정 기업에 점유율이 집중된 산업(소프트웨어, 콘텐츠)에서도 공짜경제 기업들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할 수 있다. 시장이 커서 틈새시장을 노리기 쉽고, 성숙된 시장이라면 유휴 자원이 많이 있어 창조적 조합으로 새로운 공짜경제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기술 발전과 소비 니즈 변화에 따라 산업 간 융합이 일어나는 분야(방송, 통신)에서도 공짜경제 사업 모델이 나타나기 쉽다. 실제로 케이블 방송, 초고속 인터넷, 유무선 통신 관련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결합 상품을 내놓으면서 이미 특정 품목이 사실상 공짜로 제공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 공짜경제 시대의 창과 방패
가까운 미래에 공짜경제 사업 모델의 개발 또는 방어책 마련은 기업들의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많은 기업은 공짜경제 사업 모델을 먼저 개발해 시장 판도를 바꾸려 할 것이다. 하지만 공짜경제 사업 모델을 공격 수단으로 이용해 성공하려면 수익 모델의 창의적 설계가 필수적이다. 공짜경제 모델과 관련해 특히 많은 기업이 광고 기반 전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만 광고로 수익을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를 무료로 주고 주행거리에 따라 사용료를 받는다는 베터플레이스의 계획은 유가와 전기료의 큰 차이 때문에 상당히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휘발유의 10분의 1∼20분의 1 수준인 전기를 연료로 사용하면, 4년 반 정도면 원금 회수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이 회사는 2억 달러의 초기 투자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다.
한편 기존 기업들은 공짜경제를 기반으로 한 경쟁자의 출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DBR에 ‘공짜경제의 태풍이 온다’를 기고한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존 기업이 공짜경제 사업 모델에 저가 공세로 맞불을 놓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 증권사들이 수수료가 싼 온라인 증권사에 대항해 고객 자산 전반의 투자 자문 기능을 강화한 것처럼 시장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며 “공짜경제의 수익 원천이나 스폰서를 먼저 찾아 이를 선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 공짜경제의 4가지 유형 ▼
* P: 공급자(Provider), U: 사용자(User), 3rd: 제3자(3rd Party), P=U: 프로슈머(Prosumer)
《공짜경제 사업모델의 본질은 수익지대의 극적인 이동에 있다.
이미 가치가 크게 떨어졌거나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쓸 수 있는 제품 및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공짜로 줘버리고 이를 통해 다른 제품, 서비스, 시장을 새로운 수익지대로 개발해 이익을 얻는 것이다.
프린스의 CD 공짜 배포는 가치가 떨어진 기존 제품(CD) 대신 관련 제품 및 서비스(콘서트)에서 수익을 창출했다.
최근 나타나는 공짜경제의 사례는 사업 관계자의 수와 지불 발생 여부에 따라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표 참조).
》
미끼제품 주고 관련 서비스 소비 창출
▽사업 재정의 방식=이는 특정 제품을 고객 유인의 미끼로 주고 그 대신 관련 제품 및 서비스의 신규 소비를 창출하는 형태다. 이런 사업 모델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가 필요하다. 첫째, 면도기와 면도날의 경우처럼 공짜 또는 거의 공짜로 주는 제품과 유료 판매 제품의 상호보완 성격이 강해야 한다. 둘째, 신규 음반, 서적의 공짜 배포처럼 수많은 배포 대상자 중 일부가 자연스럽게 유료 제품 및 서비스를 구매할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
광고 매개체 삼아 제3자로부터 수익 얻어
▽스폰서 방식=온라인에서 가장 보편화된 공짜 사업모델이다. 사용자의 지출이 없는 대신 일반적으로 광고를 매개체 삼아 제3자, 즉 스폰서로부터 수익을 얻는다. 따라서 사업의 성공 포인트는 대규모 가입자의 확보와 효과적인 광고모델 개발에 있다. 그러나 광고기반 사업모델에는 광고시장 규모의 한계와 신문 방송 등 주류 미디어 기업과의 경쟁 등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스폰서 방식 사업모델에서 향후 과제는 광고 이외의 새로운 수익 원천을 발굴하는 것이다.
프로슈머 지원해 차세대 시장 선점 노려
▽프로슈머(prosumer) 공유 촉진 방식=개인 간 파일 공유(P2P) 등 프로슈머들의 거래를 기업이 지원하는 형태다. 여기서는 기업이 거래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므로 수익을 창출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금전적 수익 대신 전략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사업 모델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애플, 노키아, 구글 등은 최근 경쟁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무료 배포하고 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금전적 수익이 아니라 프로그램 및 콘텐츠 프로슈머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여 차세대 모바일 기기 시장의 표준과 주도권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시장 지배기업을 공격하기 위해 활용
▽가치 이전 방식=최근 새롭게 나타나는 형태로 시장지배적 기업의 고객 기반을 무너뜨리거나 타 산업의 가치를 가져오기 위한 공격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성공할 경우 산업의 판도를 크게 바꾸게 되며 실패하더라도 공격 대상 기업의 지배력이나 산업의 가치에 큰 피해를 끼치게 된다. 사무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피스의 지배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IBM, 선, 한컴, 구글 등이 내놓은 다양한 무료 오피스 제품은 향후 MS의 시장지배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새로운 산업 판도를 만드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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