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칼럼]인간적인 사회라면…

  • 입력 2008년 9월 22일 02시 56분


시대마다 특징적인 질병이 있다. 광복 전에 공포의 대상은 폐결핵이었다. 이상 김유정 이상화 같은 문학의 별을 일찌감치 데려간 저승사자는 폐결핵이다. 닭 30마리와 구렁이를 고아 먹고 일어나야겠으니 탐정소설 번역거리를 구해달라고 친구에게 쓴 김유정의 편지는 지금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운명하기 열하루 전의 일이었다.

방직공장 여공들이 특히 결핵에 취약했다. 전설적인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주연해서 심금을 울렸던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인공도 폐결핵으로 죽는다. 그 폐결핵이 요즘 다시 퍼진다는 소식이지만 전과 같은 공포 대상은 아니다. 한센병도 불치병으로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요즘은 에이즈에 그 자리를 양도한 바 있다.

전에는 병명조차 없었던 희귀병이나 성인병이 근자에는 사람 입길에 자주 오르내린다. 소실을 거느릴 정도는 돼야 걸린다는 소갈증, 즉 당뇨병은 아주 흔한 병이 되었다. 잘 먹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고등학생 때 모르는 영어단어를 찾아보니 통풍(痛風)이라고 나와 있었다. 통풍이 어떤 병이냐고 물어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동물성 단백질 특히 핵산의 과잉섭취로 생긴다는 이 병을 앓는 이가 시골엔 없었다.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 해서 붙였다는 통풍 환자가 최근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 연구용 회충 알을 구할 수 없어 중국에서 수입해 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질병도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

노망, 치매증, 알츠하이머병

‘철나자 망령’이란 속담이 있다. 젊을 적엔 무얼 모르고, 무얼 좀 알게 되면 이내 노년이 되어 정상적인 언동에서 일탈한다는 뜻이다. 젊음의 객기나 노년의 아집을 아울러 경계하는 소리다. 또 꾸준히 세상사를 공부하라는 함의도 있다. 모든 속담이 그렇듯이 사실 묘사에서 출발한 것으로 우리네 삶의 짤막함을 간결하게 표현한다. 요즘 치매증이라 불리는 병은 전에는 망령이나 노망이라 했다. 질병이라기보다는 노년의 징후로 간주한 셈이다.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하면 고급 난치병이라는 느낌을 준다.

몇 해 전에 ‘아이리스’란 영국 영화가 상연된 바 있다. 주인공은 작가 아이리스 머독이고 남편이 쓴 회고록을 각색해서 만든 실화 영화이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주인공의 만년을 다뤘는데 환자는 자기 언동에 대한 자의식이 전혀 없다. 백치적인 행복이라고 할까, 환자의 무자각의 비극을 너무나 실감나게 그렸다. 인간을 괴롭히는 질병도 참 가지가지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했다. 이 병의 예방이나 치유책으로 손이나 머리를 많이 쓰라고 흔히 권유한다. 그러나 허술한 일반론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리스 머독은 영어로 된 최초의 사르트르 연구서를 쓴 철학자로서 철학 에세이도 몇 권 남겼다. “나의 행복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너무 슬퍼 보여 불행인 줄 알고 몰아냈다”라는 짤막하나 함축적인 행복론을 담은 처녀작 ‘그물을 헤치고’ 이후 스물대여섯 권의 소설을 연달아 발표했다. 영국에서 가장 지적이고 정력적인 여성이란 평판을 얻었지만 70대 중반에 노망이 들었다.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 마지막 소설의 교정을 본 뒤 책이 나왔을 때는 자기 책을 알아보지 못했다. 반면에 88세 된 할머니 추리소설가가 19번째 소설을 냈다는 최신 보도도 있다. 머리는 철학자 작가가 더 많이 썼을 터인데 말이다.

예방 사회복지 정책 구상을

과(過)교육과 함께 고령화가 당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의 결과다. 고령인구 비율 증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그것을 경제적 사회적 부담이란 측면에서만 고려하고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노년층 증가가 경제적 재앙이라는 투의 불안심리가 확산돼 은연중에 노인 층하를 부추긴다.

노약자 실직자 장애인 같은,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구성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가 아니다. 그들을 눈치꾸러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알츠하이머의 날’이 노약자 개개인에 대한 계고의 날로 그쳐서는 안 된다. 예방의료 시스템의 확립과 예방적 사회복지 정책 구상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야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될 것이다. 어제(21일)는 우리말로 하면 ‘노망의 날’이었다.

유종호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특임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