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 건전성 위협하는 금감원 출신 재취업 행렬

  • 입력 2008년 9월 22일 02시 56분


금융회사를 감독하던 금융감독원 간부들이 퇴직 직후 금융회사 감사로 자리를 옮기는 게 관행처럼 돼 버렸다. 정갑윤 한나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올 7월까지 금감원 2급 이상 간부 출신 재취업자 100명 중 92명이 금융기관에 자리를 잡았다. 은행 32명, 증권회사 21명, 보험회사 17명이다. 이 중 72명은 감사로 갔다. 2003년엔 금감원 간부가 퇴직 이틀 전 은행 상임감사로 자리를 옮겼다. 인사 관행 쇄신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올해 3월엔 금감원 요직 출신 2명이 각각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감사로 옮겼다.

이들은 ‘공무원과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은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 부서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나 법인·단체에 취업할 수 없다’는 공직자윤리법을 피하기 위해 퇴직 전 다른 부서로 잠깐 자리를 옮기는 ‘경력 세탁’까지 한다. 감독 업무를 맡아 오다가 인력개발실 교수로 옮겨 퇴직하는 식이다. 재취업자 중 50명은 퇴직 다음 날 금융기관으로 출근했다.

상법 412조는 ‘감사는 이사의 직무 집행을 감사’하며 ‘언제든지 회사 업무와 재산 상태를 조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회사 내부를 통제하는 막중한 자리다. 그러나 한 전직 은행 감사는 “감사 업무는 직원들이 주로 처리하고 실제로는 감독기관에 대한 로비가 중요한 역할”이라고 털어놓았다. 금융회사로서는 금감원 출신 감사를 받아들이면 금감원 현직 간부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고, 사고가 터지면 로비 창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금감원 출신 영입은 퇴직자, 금감원, 금융회사가 이익을 나누는 ‘인사 거래’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감독권을 행사한다. 그런 금감원이 피감독 금융회사와 인적 유착관계를 맺는 것은 감독의 적실성을 손상시킬 우려가 크다. 외국의 경우 금융업계 인재가 금융감독 기관에 영입됐다가 다시 업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취업제한을 두지 않는 나라도 있지만 그런 나라에선 감독기관 퇴직자의 현직 감독기관 직원 접촉을 금지한다. 국내 금융검사와 감독의 복잡한 절차를 들어 금감원 전현직의 야합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對)금감원 로비 업무로부터 자유로운 금감원 출신 금융권 감사가 과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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