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국내 프로야구 팬들은 롯데자이언츠의 역대 프로야구 최다관중 신기록 수립(종전 1995년 LG·126만4762명)을 축하함과 동시에 한 사람의 기구한(?) 운명을 목격했다. 19일 부산 사직구장을 찾아 선수단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건넨 어윤태(62) 부산영도구청장이 그 주인공이다.
어 구청장은 1993년에서 95년까지 LG트윈스 단장으로 재직하며 90년대 초반 LG트윈스의 전성시대를 열어젖힌 주역이다. 당시 그가 내세운 '자율야구' 또는 '신바람 야구'는 정체됐던 한국 프로야구계에 일대 돌풍을 몰고 왔다.
95년 LG트윈스는 최다관중 기록을 세우며 '단일팀 관중 120만 시대', '프로야구 500만 관중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당시 경쟁 팀인 롯데자이언츠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13년 후. 이번엔 그의 고향인 부산에서 롯데자이언츠가 과거 그가 세웠던 영광의 기록을 보란 듯이 깨뜨렸다. 21일 현재 롯데자이언츠가 불러 모은 누적 관객 수는 132만6213명. 그가 이끌던 LG트윈스는 현재 고전 중이다.
어 구청장의 처지도 확연하게 뒤바뀌었다. 1993년부터 2004년까지 LG스포츠에서 일해 온 그는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해 2006년 고향인 부산에서 구청장에 당선됐다.
10여년 만에 야구단의 영욕은 엇갈렸지만 어 구청장은 최다관중 신기록 수립의 현장에 두 번 다 참여하는 '영예'를 누렸다. 한번은 팀의 리더로, 또 한 번은 과거의 경쟁상대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연고 도시의 리더로. 그를 전화로 인터뷰 했다.
- 한 때 경쟁자였던 롯데의 연고도시에서 구청장을 지내니 기분이 묘할 텐데….
"1990년대 초반은 LG트윈스가 정말 대단했는데…. 허허.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거다. 내가 부산 출신인데 내 고장에 연고를 가진 팀이 내 기록을 깨뜨린 것을 정말 축하해주고 싶다. 자랑스럽다."
- 부산시민들이 야구에 특별히 열광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무엇보다 부산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우선 일본과 가깝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해방 이후 라디오를 통해 야구를 계속 접할 수 있었고, 그 이전부터 야구팀이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둘째는 부산이 한국전쟁 때 각 지역의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피난처로 삼았던 동네라는 점이다. 미국에서 야구와 미식축구가 다인종을 뭉치게 만든 구심점 역할을 했듯 부산에서 야구는 타향에서 온 시민들을 하나로 모아내는 도구 역할을 해왔다."
"물론이다. 애향심이 강한 부산은 예전부터 프로야구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었다. 더 성공하려면 롯데구단 최고경영층의 관심이 더 필요한 상황인데…, 무엇보다 신격호 회장이 부산에 돔구장을 지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서울에 돔구장을 만들어 보기 위해 꾸준하게 시장조사를 해봤던 사람이다. 일본의 '후쿠오카 돔'처럼 '부산 돔'이 생긴다면 상업적 성공과 문화적 인프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부산에 한 개 구단이 더 만들어 져도 각각 200만 관중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부산 야구관중 400만 시대'란 가정에는 두 가지 전제가 더 필요하다. 어 구청장은 4만5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돔 구장, 부산 야구팀의 지속적인 4강 진입을 그 요건으로 꼽았다.
LG스포츠단에서만 10여년을 일해 온 이력 때문인지 그는 각종 통계와 스포츠 심리 이론을 거론하며 야구의 우수성에 대해 열을 올렸다.
"야구는 열정과 지적 스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행정가로 변신한 지금도 프로야구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LG트윈스는 줄곧 하위권에서만 맴돌고 있다.
어 구청장은 LG스포츠단 사장으로 재임하던 2002년 포스트 시즌에서 2위를 했던 김성근 감독(현 SK와이번즈 감독)을 해임해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결정'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 감독은 최근 '야신(野神·야구의 신)'이란 칭송을 받으며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 구청장은 "그 분이 당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건, 나는 절대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닫았다. 당시 선수단 내의 역학관계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듯한 속내가 언뜻 비쳤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 영상취재 : 임충재 동아닷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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