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3년이면 너무 늦습니다”

  • 입력 2008년 9월 24일 03시 00분


위징은 당나라 태종 이세민 시대의 명신(名臣)이었다. 방현령 두여회와 함께 당태종을 잘 보좌해 ‘정관(貞觀)의 치세(治世)’라는 말을 역사에 남기게 했다.

태종은 즉위한 직후 위징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현명한 군주가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백 년의 세월은 필요하지 않겠소?”

“훌륭한 군주의 치세는 소리가 금방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1년이면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고 3년이면 너무 늦습니다. 백 년을 기다릴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위징은 남북조 시대의 분열을 끝낸 수나라가 과도한 조세와 부역으로 백성의 삶을 어렵게 해 바로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10년 대란(大亂)’의 혼란을 겨우 수습한 만큼 신속히 민생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종은 건의를 받아들여 조세와 부역의 감소, 율령체제 정비와 교육 진흥에 박차를 가해 나라를 안정시켰다. 집권 과정에서 형과 동생을 죽이고 고구려 침공에 실패했던 그가 중국에서 위대한 황제로 추앙받는 것은 이런 업적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를 출범시킨 민심과 시대적 흐름의 핵심은 무엇일까. ‘진보’라는 단어를 부끄럽게 만든 퇴행적인 운동권 논리로 대한민국 체제를 흔들고 경제성장 동력을 떨어뜨린 ‘노무현식 나라운영’의 폐해를 바로잡고, 자유 창의 경쟁 개방에 바탕을 둔 선진형 국가체제로 바꾸라는 요구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현 정부의 존재 이유이고 정권의 최종적 성패도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부 7개월의 성적표는 ‘합격점 이하’다. 좌파 정권의 적폐(積弊)를 고치겠다는 말은 무성했지만 실제 성과는 미흡했다. 글로벌 경제악재가 눈 덩이처럼 커졌는데도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민생 대책은 늘 몇 발씩 늦었고 기업규제 혁파는 지지부진했다. 정권을 내놓은 현 야당의 견제도 무시할 순 없지만 최종적으로는 집권세력의 책임이다.

정부여당의 일부 인사는 상식 이하의 언행으로 비판을 자초했다. 왜곡된 광우병 괴담으로 사회가 동요할 때 거짓에 정면으로 맞서기는커녕 출렁이는 분위기에 영합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우유부단한 우파 정권의 초식동물 속성에 따른 한계도 눈에 띄었다. 창조적 성취와는 거리가 멀지만 먹잇감에 허점이 보이면 집요하게 물어뜯어 상처를 덧내는 데 능숙한 육식성 범좌파 세력의 저항과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끌려 다녔다. 그것도 정권 출범 첫 해에.

이 시대 개혁의 축은 민간의 활력을 극대화하고 공공부문의 비대한 군살을 빼는 것이다. ‘카지노 자본주의’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금융건전성 강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정부의 규제강화, 더구나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산업분야 규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악용될 수는 없다. 전교조와 민노총, ‘정연주 시대 KBS’로 대표되는 교육, 노동, 방송 분야 일각의 좌편향을 시정하는 것도 우리 공동체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시급한 과제다.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2010년부터는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줄줄이 선거가 기다린다. 이해집단과 맞서야 하는 개혁을 선거철에 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은 올해와 내년밖에 기회가 없다. 졸속은 경계해야 하지만 비판이 나올 때마다 움찔대면서 시간만 보내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임(背任)행위다. 위징의 말처럼 나라를 바꾸는 데 3년이면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권순활 산업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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