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동정민]신고 한 건 없는 ‘신고포상금’ 예산신청 왜

  • 입력 2008년 9월 26일 03시 00분


산림청은 2003년부터 산불신고자 포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지난해까지 5년 동안 계속 예산편성만 했을 뿐 한 푼도 집행한 적이 없다.

산불신고자 포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방화범을 잡거나 방화범에 대한 결정적인 신상정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방화로 추정되는 산불 건수가 적은 마당에 그 방화범을 직접 잡아야 하니 신고가 없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부기관들이 유행처럼 ‘신고 포상금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포상’ 없는 포상금 제도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이 25일 의뢰해 국회예산정책처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23개 정부기관이 운영하는 54개의 신고 포상금 제도 예산으로 편성된 93억2700만 원 중 69.2%인 64억5400만 원만 집행됐다.

지난해 신고 포상금 가운데 10개는 예산이 한 푼도 집행되지 않았다. 이 중 법무·검찰공무원의 부조리나 산림 내 불법행위자 등 4개 포상금은 3년 연속 집행 실적이 전혀 없었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로 ‘신고 포상금 제도’를 치면 포상금 파파라치 양성 사이트가 여러 개 나올 만큼 ‘포상금’을 타가려는 사람이 많은데 왜 이런 예산이 낮잠을 자고 있을까.

포상금 제도를 보면 ‘부조리 신고’ ‘식물방역법 위반자’ 등 무엇을 신고해야 할지 잘 알 수 없는 게 많다. ‘고용 안정사업 부정수급자’ ‘체당금 부정수급자’처럼 관련 업무에 종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신고할 수 없는 포상금도 있다.

경찰청과 법무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비슷한 명목의 선거사범 신고·고발자를 포상하는 포상금 제도를 5개나 운영 중이어서 어디에 신고해야 할지도 헷갈린다.

문제가 생기면 포상금 제도부터 도입하고 실효성 평가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포상금 지급 실적이 없어도 예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제도를 그대로 두는 것은 부처의 모럴 해저드이다.

무작정 만들어놓고 국민이 알아서 신고하라고 방치하는 정부의 태도는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정책이다. 이처럼 ‘나 몰라라’ 식의 제도를 도입해놓고 5년 동안 한 번도 집행되지 않은 신고 포상금을 내년도 예산에 다시 넣을지 이번 국회에서 지켜볼 참이다.

동정민 정치부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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