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찬국]‘외화 유동성’ 급한 불 끄기

  • 입력 2008년 9월 29일 02시 59분


우리 금융권의 외화유동성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가 100억 달러 규모로 직접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을 줄이기 때문에 단기외채를 고려하면 오히려 불안감을 부추기는 일이라고 걱정한다. 또 외국자본 유입 유인을 줄이므로 불안의 끝이 아니라고도 한다.

선물환 거래 불균형이 주요 원인

당장 경상수지 적자가 주범으로 지목됐다. 그래서 “달러가 귀한데 아이들 외국 보내는 것 자제해야”라는 말이 나온다. 국제중학교를 만든다는 교육당국 정책은 상당히 애국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상수지 적자는 7월까지 총 78억 달러이다. 전체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5% 안팎인 선진국이 꽤 많은 데 비해 우리는 채 1%도 안 된다. 경상수지 외의 추가 요인을 의심하게 한다.

외화유동성 부족은 외국 투자자금의 대규모 이탈보다는 필요한 만큼의 외화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한 데서 생겼다. 수입대금 결제 이외에도 선물환 거래 불균형은 외화 수요를 부추기는 중요한 요인이다. 대호황을 누리는 조선업계는 앞으로 받을 외화를 선물환 거래로 은행에 미리 팔고 있다. 원유를 계속 수입하는 정유사의 경우는 반대로 미래에 쓰일 외화자금이 필요하므로 선물 거래를 한다.

이때 수요와 공급 규모가 맞아떨어지면 좋지만 실제로는 정유사가 사려는 것보다 조선업체가 팔려는 달러가 훨씬 많다. 규모로 보면 경상거래에 따른 적자폭보다 선물환 수급 차이(6월까지 584억 달러)가 더 크다. 선물환을 매입한 은행은 환위험을 회피하려고 현 시점에서 그만큼의 외화자금(현물환)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런 수요가 최근 문제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이다.

부족분을 해외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그동안 국내 및 외국은행이 그런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국내외 금리 차로 인해 위험부담 없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여건이어서 외국은행 지점의 주도로 해외에서의 자금 유입이 비교적 큰 문제없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지난주 극에 달한 미국 금융 불안 악화는 이런 자금 유입을 어렵게 한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장기 외화차입금 중 만기가 돌아오는 것이 많아 외화자금 부족을 더 부추긴다.

금융 불안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은행 간에 상대에 대한 불안감이 심각해진 상황이다. 평소 런던국제금융시장에서 은행 간 단기자금 거래에서 적용되는 금리인 리보(LIBOR)는 같은 만기의 미국 재무부 단기채금리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런던금리가 미 국채금리보다 훨씬 높게 형성되고 있다. 금융시장 안정책이 미국 의회에서 신속히 처리되지 못할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이런 상황은 극심해졌다.

대외거래 원화 결제비중 늘려야

경상수지 적자 해소는 외화유동성 문제 개선에 기여할 것이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같은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다양한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외거래에서 원화 결제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자국통화를 사용하면 환위험을 거래 상대에게 안기는 격이니 요즘 같은 선물환 불균형 해소에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조만간 미국 금융시장 불안도 다소 진정될 것이다. 당장의 대응은 응급조치일 수밖에 없다. 이번 외화자금 지원은 과거 빈번했던 무책임한 경제주체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와는 성격이 다르다. 시장의 정상적 작동을 돕기 위해서다. 젖으면 값이 떨어지는 옷감을 보관하는 창고에 불이 붙었는데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과 유사하다. 외환보유액 감소는 정부가 빌려준 외화를 수개월 후 돌려받기 때문에 큰 걱정거리는 못 된다. 급한 불을 꺼야 한다. 옷감 창고의 불을 빨리 끌수록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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