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 복도의 진풍경이 보여주는 정치 후진성

  • 입력 2008년 10월 2일 02시 59분


6일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각 상임위원회와 의원 사무실 주변에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과 금융계 관계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증인 채택에 관한 여야 간 논의를 귀동냥하면서 최고경영자가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임원들이 지연 혈연 학연이 닿는 의원이나 보좌관을 상대로 맨투맨 작전을 펴기도 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지만 올해는 여야가 유난히 많은 기업인을 국감장에 부를 태세여서 기업 측의 ‘빠지기 로비’도 치열하다.

어떤 상임위는 기름값 담합 의혹을 이유로 모든 정유사 대표를, 금융위기와 관련해 시중은행장 전원을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이다. 제과회사 사장들은 모두 멜라민 파동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대그룹 주요 인사들은 매번 단골로 거론되는 증인 후보들이다. 민주당은 조석래 효성 회장과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 등 이명박 대통령과 조금이라도 연(緣)이 있는 기업인들을 표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기업인을 국감 증인으로 부르는 것은 기업에 대한 영향력 행사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후원금 모집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이런저런 부탁을 하기도 좋다. 과거에는 기업인들을 증인에서 빼주는 조건으로 뇌물을 받았다가 형사처벌당한 의원들도 있었다. 국감 자체가 다른 나라에 없는 제도이지만 ‘국정에 대한 감사’라는 원래 취지와 별 관계도 없는 기업인들을 오라 가라 하며 호통 치는 풍경은 후진적 구태(舊態)다.

국정이나 민생과 긴밀하게 관련된 사안이면 민간 기업인이라도 국회에 불러 질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증언을 꼭 오너나 최고경영자한테서 들을 필요는 없다. 관련 서류를 제출받거나 실무 책임자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법적 책임을 다투는 일이라면 행정부나 수사기관에 맡기면 된다.

기업인 증인 채택이 행정부 견제 및 감시라는 국감의 취지에 부합하는지, 그에 따른 부작용은 없을지 따져보고 필요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옳다. 경제현장에서 바쁘게 뛰어다녀야 할 기업인들을 불러 주눅 들게 하는 일이 우리 경제를 위해 과연 도움이 될지 원려(遠慮)할 줄 아는 국회의원들이라야 선진국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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