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전 세계는 천 길 낭떠러지로 몰렸다. 증시는 대공황 이후 최악으로 폭락했고 미국 최고의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의 기업어음조차 매수자가 사라졌다. 선진 7개국(G7)과 G20, 국제통화기금(IMF) 수뇌부가 모여 지구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를 점검했지만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공포는 절망으로 변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구원은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나왔다. 영국 정부가 은행을 부분적으로 국유화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하고 은행 채무의 무한 보증이 유로지역에서 채택되면서 아마겟돈의 싸움은 일단 정부의 승리로 끝났다.
이제 글로벌 금융시장은 G7 중앙은행의 무제한 유동성 공급으로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엄청난 잔해가 나뒹굴고 있고 지뢰도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세계 국내총생산(GDP) 규모(54조 달러)보다 많은 55조 달러의 신용부도스와프(CDS) 청산이 남아 있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전부터 불경기에 진입한 실물경제가 더 나빠질 수 있고 글로벌 부동산 경기도 바닥을 알 수 없다. 또 투자심리도 여전히 불안하다.
사상 초유의 대지진을 겪은 직후라 여진의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흉흉한 소문도 난무한다. 이제는 신용카드 대란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정부의 신용조차 무너질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등장한다.
그러나 사상 최악의 심리적 공황상태라는 점을 제외하고 냉정히 본다면 이번 사태는 절대 통제 불능의 상황은 아니다.
미국과 유로지역에서 투입되었거나 투입할 구제금융 금액은 현재까지 이들 나라 GDP의 5% 수준이다. 1991년 스웨덴의 국가부도 사태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당시 GDP의 4% 수준이었고 우리나라 외환위기 때 사용된 공적자금 규모는 GDP의 28%였다. 따라서 사태가 더 악화된다 해도 G7이 투입할 수 있는 공적 자금의 여력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또 과거 사례를 본다면 투입된 공적자금은 경제가 회복되면서 상당 부분 회수되었기 때문에 실제 세금으로 메운 금액은 예상보다 현저히 낮았다.
그래서 신용위기만 극복되면 실물경제는 통상의 불경기 수준으로 그칠 것이다. 전후 발생한 10번의 미국 불경기의 평균 지속 기간은 10.3개월이었다. 혹자는 이번 불경기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설사 1980년대 초반의 악성 불경기(16개월 지속)처럼 길어진다고 해도 내년 봄이면 바닥을 지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금융위기가 아니라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정확하게 지적한, 공포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상진 신영투자신탁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