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홍규]규제개혁 속도 높이기

  • 입력 2008년 10월 18일 02시 56분


미국이 급하기는 급했나 보다.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종주국 미국이 은행을 국유화하는 비상수단까지 쓰게 됐다. 이를 두고 국내에 두 가지 시각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시장만 찾더니 그것 봐라’ 하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이를 빌미로 정부규제가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다.

세상에 완전한 시장이란 없다. 시장실패란 언제나 존재한다. 그래서 시장과 정부는 따로따로일 수 없다. 미국의 금융위기를 촉발한 원인도 시장실패에 정부가 둔감해서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은 늘리면서 그 위험한 상품을 다른 상품과 섞어 위험을 감출 수 있게 했으니 투자가들의 경계심이 작동할 수 없었다. 정보의 비대칭이야말로 시장실패의 첩경이고, 시장을 투명하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탈출의 해법이 정부보다 시장에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여 생산적 에너지를 창출하기 쉽기 때문이다. 과도한 탐욕과 쏠림의 문제만 규율된다면, 혁신과 효율을 만들어내는 데 시장이 가진 ‘자유와 경쟁’만큼 유효한 수단은 없다. 더구나 소수 관료의 머리에 의해 작동되는 정부보다 다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시장이 더 믿을 만하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경험이다. 그래서 이 위기국면에서도 우리가 할 일은 무엇보다 규제를 제대로 개혁하는 일이다.

관료저항-시스템 취약이 걸림돌

문제는 정부마다 그동안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우선, 관료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 규제는 관료의 일차적 존재 이유이다. 그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이다.

규제완화가 어려운 다른 이유는 환경, 토지, 안전 등과 같은 분야의 덩어리 규제를 완화하는 데 사회적 저항이 크기 때문이다. 시스템도 취약하여 규제가 시스템을 보완하다 보니 규제를 없애면 숭례문 화재와 같이 사고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사회에 도덕적 해이도 크니 도덕이 할 일을 규제가 대신하는 부분도 있다.

모두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관료의 의식을 바꾸고, 사회적인 저항을 설득하고,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도덕심을 높이는 일이 어찌 쉬운가. 그럼에도 지금의 규제개혁 속도는 너무 늦다. 규제개혁에 대한 배전의 노력이 필요하다. 과연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첫째, 규제개혁의 노력을 좀 더 전략화할 필요가 있다. 관료의 의식은 쉽게 바꿀 수 없지만 규제개혁 노력에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문책 위주의 감사를 지양함으로써 규제를 집행하는 그들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이미 있는 규제를 없애기는 힘들어도 제대로 된 규제영향평가를 한다면 규제의 증가는 막아낼 수 있다. 사고 한 번 났다고 온갖 규제로 면피하려는 생각만 하지 않아도 규제는 늘어나지 않는다.

둘째, 규제의 수를 줄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규제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다. 관료의 편의를 고려한 규제를 국민의 편의를 고려한 규제로, 명령지시적인 규제를 시장유인적인 규제로 바꿔야 한다. 송전선로 건설이 발전소 짓는 것보다 오래 걸리게 하는 규제기관의 협조 시스템도 바꾸어야 한다. 공공부문의 민영화도 더 적극적이어야 하고, 규제의 범위, 내용, 절차를 명확히 하여 부정부패의 소지도 줄여야 한다.

셋째, 규제개혁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규제개혁이란 말은 많지만 정부가 과연 얼마나 이에 투자를 하는지 모르겠다. 정부의 국정철학과 목표를 보다 명확히 하는 것도 규제개혁을 강화하는 일이다. 정부의 구성원이 철학과 목표를 공유하는 모습이 아쉽다. 목표를 공유해야 역할이 정해진다. 그래야 할 일과 안 할 일이 분별되고, 고쳐야 할 규제가 보이는 법이다. 정부2.0 시대에 과연 어떤 규제 시스템을 가질 것이냐에 대한 고뇌가 요구된다.

정부 국정철학-목표 명확히 해야

시장경제라는 측면에서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다. 더구나 높은 대외의존적 구조를 갖고서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는 없다. 피터 드러커가 지적한 우리의 장점인 기업가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도, 우리 경제는 자유의 공기를 마셔야 하며, 규제를 하더라도 명품의 규제가 되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의 경제규제 비용이 약 48조 원에 이른다고 하니, 10%만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이 위기에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이홍규 한국정보통신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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