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쌀 직불금, 盧정권의 ‘은폐’가 禍 키웠다

  • 입력 2008년 10월 20일 02시 56분


감사원은 당초 작년 9월쯤 쌀 직불금 감사를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3월로 앞당겼다고 한다. 청와대가 이미 오래전부터 쌀 직불금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감사로 드러난 실상을 공개하지 않았고 임기 중에 제도 개선을 매듭짓지도 않았다. 그 후유증을 지금 고스란히 겪고 있는 셈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해결을 미뤄 새 정부 출범 후 ‘광우병 사태’를 초래한 것과 여러모로 매우 닮았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 비공개 결정이 전적으로 자체 판단이었다고 주장한다. 감사를 끝낸 뒤 작년 7월 감사위원회를 열어 사회적 파장과 소작농 피해를 고려해 비공개를 결정하고 부당 수령자 명단을 비롯한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요청으로 착수한 ‘엄청난’ 감사 결과를 청와대와 상의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비공개 결정을 했고, 심지어 중요한 국가 문서까지 폐기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2003년 감사 결과 공개제도 시행 이후 감사원이 처리한 500건 정도의 감사 가운데 공개하지 않은 것은 10건에 불과하다. 이 중 9건은 자체 훈령에 명기된 국방 및 기업 비밀과 관련된 것이고 ‘임의의 사유’로 감사위원회가 비공개 결정한 것은 쌀 직불금 감사가 유일하다. 더구나 감사원은 비공개 결정 한 달 전 청와대에 감사 결과를 소상히 보고했고, 그 직후 노 대통령 주재로 관계 장관회의까지 열렸다. 독립기관인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확정짓기도 전에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노무현 정부는 감사원 보고를 받은 즉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았다. 그에 따른 후과(後果)가 상당했겠지만 그랬더라면 미비한 제도로 인한 부작용의 확산도 막고 금융위기 극복에 국가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이때에 직불금 소동으로 국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을 것 아닌가.

쌀 직불금 제도는 부당 수령자가 공직자 4만 명을 포함해 수십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만으로도 노 정부의 대표적인 국정 실패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더 큰 잘못은 이를 솔직히 시인한 뒤 그 바탕 위에서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은폐와 미봉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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