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은 감사 결과 비공개 결정이 전적으로 자체 판단이었다고 주장한다. 감사를 끝낸 뒤 작년 7월 감사위원회를 열어 사회적 파장과 소작농 피해를 고려해 비공개를 결정하고 부당 수령자 명단을 비롯한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요청으로 착수한 ‘엄청난’ 감사 결과를 청와대와 상의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비공개 결정을 했고, 심지어 중요한 국가 문서까지 폐기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2003년 감사 결과 공개제도 시행 이후 감사원이 처리한 500건 정도의 감사 가운데 공개하지 않은 것은 10건에 불과하다. 이 중 9건은 자체 훈령에 명기된 국방 및 기업 비밀과 관련된 것이고 ‘임의의 사유’로 감사위원회가 비공개 결정한 것은 쌀 직불금 감사가 유일하다. 더구나 감사원은 비공개 결정 한 달 전 청와대에 감사 결과를 소상히 보고했고, 그 직후 노 대통령 주재로 관계 장관회의까지 열렸다. 독립기관인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확정짓기도 전에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노무현 정부는 감사원 보고를 받은 즉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았다. 그에 따른 후과(後果)가 상당했겠지만 그랬더라면 미비한 제도로 인한 부작용의 확산도 막고 금융위기 극복에 국가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이때에 직불금 소동으로 국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을 것 아닌가.
쌀 직불금 제도는 부당 수령자가 공직자 4만 명을 포함해 수십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만으로도 노 정부의 대표적인 국정 실패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더 큰 잘못은 이를 솔직히 시인한 뒤 그 바탕 위에서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은폐와 미봉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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