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악플에 맞서기

  • 입력 2008년 10월 24일 02시 56분


인터넷이 없을 때도 ‘악플’이 있었다. 경험담이다. 1995년 무렵 서태지 기사를 쓰면서 두어 줄 비판했더니 극성팬들이 팩스로 항의를 해 왔다. 일방적 막말이 대부분이었고 욕설도 있었다. 그것도 옆 부서로 와서 “뭘 썼기에 일을 못 할 정도로 팩스가 계속 오냐”는 말을 들었다. 당시는 e메일이 아니라 팩스로 자료를 받던 때여서 종일 가슴을 졸였다.

인터넷 e메일로 악플을 받은 경험도 많다. 방송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는데 욕을 잔뜩 담은 e메일이 따라왔다. 참을 수 없어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컴퓨터(IP 주소)는 알 수 있지만 PC방 같은 공용 컴퓨터인 경우에는 보낸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 해서 신고하지 않았다. 그 욕설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악플은 이처럼 ‘찾을 수 없음’에 숨은, 생각 없는 비방이다. 나름의 의사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화장실 낙서’ 같은 마구잡이를 표현의 자유라고 하기에는 받는 이의 명예가 일방적으로 다친다.

정지민 씨는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을 둘러싼 MBC ‘PD수첩’의 의도적 오역 실태를 지적하고 나선 내부 고발자였다. 그것이 드러남으로써 서울 한복판에서 기승을 부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가 꺾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자는 20대 중반의 여성인 정 씨가 그 아슬아슬한 고비를 제대로 넘길 수 있을지 걱정했다. 신상이 알려진 마당에 과격 시위대가 악플러로 둔갑하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정 씨는 기자에게 “각오를 했는데 초반을 제외하곤 악플이 많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한 첫날 PD수첩 게시판에 반박 재반박 글을 잇달아 올린 것에는 초기에 악플을 물리치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자신을 비난하는 댓글에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음으로써 악플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이다.

정 씨의 글을 굳이 반박하려고 해도 광우병과 관련된 영어 번역과 과학 상식 등 사안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춰야 한다. 악플 공세가 주춤한 것도 이런 게 모자랐기 때문이 아닐지…. 특히 정 씨는 PD수첩 게시판에 그치지 않고 포털에 관련 카페를 만들어 논지를 펴 나갔다.

연예인에 대한 악플은 외모 신상 소문에 대한 단순한 비방이 대부분이다. 복잡하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따질 필요가 없어 초등학생이 가담하기도 한다. 하리수 씨는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뒤 악플에 시달렸는데 추적해 봤더니 초등학교 1∼4학년이 많았고, 대학생이 1명으로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개그우먼 신봉선 씨도 TV에서 “(인기가 오르니) 외모를 비방하는 악플에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악플들은 유명세로 보고 넘길 수도 있다. 신 씨도 “옥동자(정종철)가 보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악플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면 당당히 맞서는 게 효과적일 듯하다. 정지민 씨가 그랬고, 나훈아 씨도 한 번의 기자회견으로 수개월간 떠돌던 추문을 잠재웠다.

이처럼 악플러는 익명과 음지에서만 기생하기 때문에 밝고 투명한 공간으로 끌어내면 햇빛에 쏘인 흡혈귀처럼 한마디도 못하고 사그라진다. 인터넷 실명제 등 제도적 장치도 시급하지만 스스로 존중받을 권리를 지키겠다는 마음가짐과 행동이 먼저다. 그 앞에서는 악플이 설치지 못한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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