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최병서]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그림투자

  • 입력 2008년 11월 1일 02시 58분


미국 주택시장의 버블이 꺼지면서 금융시장의 붕괴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세계경제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사람들은 부동산을 포함해 자기 자산의 가치가 급속히 하락하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당황하고 소비와 투자를 급격히 줄인다. 그림시장도 예외가 아니어서 최근 홍콩의 소더비 경매에서 중국 현대미술 경매는 35%라는 저조한 낙찰률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그림값이 떨어지며 낙착률 역시 크게 낮아졌다. 게다가 정부는 그림의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하겠다는 방침을 공표하여 미술시장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이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는 소식이다. 최근 신윤복 그림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이곳에서 개최한 조선서화대전에 관람객이 대거 몰려든 것이다. 왜 갑자기 이런 현상이 생겼는가? 드라마의 힘이다.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도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영상매체가 가지는 위력이 실로 엄청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처럼 전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계속되는 때에는 그림에 대한 관심을 그림시장에 대한 투자로 돌려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금융시장에서의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다면 말이다. 여러 문화예술 분야 중에서 자산가치가 상승하는 장르는 미술뿐이다. 연극 무용 음악 등 공연예술은 정신적인 만족은 얻을 수 있지만 시간과 함께 소비될 뿐이다. 반면에 미술품은 감상하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증식될 수 있다. 얼마나 매력적인 문화적 투자인가. 그림은 소비재이면서 동시에 투자재가 되는 셈이다.

일반인이 미술시장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가치와 가격의 괴리현상이다. 보통 재화시장에서 가격은 곧 상품가치를 반영한다. 미술품에 대한 가치는 일반인이 쉽게 알아내기 어렵다. 보통 미술시장에서 미술품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감정가나 큐레이터 평론가가 담당한다. 이들의 역할은 한계가 있으며 불완전하다. 예술품의 가치를 평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나 잭슨 폴록의 작품이지만 평균가격이 비싼 작가는 피카소와 고흐일 것이다. 그런데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도 제 손으로 그림을 팔아보지 못했다. 동생 테오가 겨우 한 점을 팔았을 뿐이다. 음악에서도 모차르트가 빈에서 예매 콘서트를 개최했을 때 고작 2명만 신청했던 적도 있다. 그러니 명작을 알아보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당대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미술시장에서 그림의 적정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 최근에 국내 주요 작가의 그림값을 객관화한 작가·가격지수가 공표됐다. 미국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의 메이, 모제스 교수가 개발한 메이-모제스 지수(Mei-Moses Index)를 응용한 것이다. 이 지수에 의하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그림값 상승을 연수익률로 환산하면 12%에 이른다. 미국의 경우도 미술품 시장이 주식시장의 투자수익률보다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을 골라야 하는가?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인가에 대한 답과도 같다.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하라는 얘기다. 즉, 투자의 목적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해 즐기고, 게다가 수익이 창출된다면 일종의 보너스라고 여기면 된다. 이것이야말로 웰빙시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문화적 투자가 아니겠는가.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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