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회생이냐 장기침체냐’ G20회의가 분수령

  • 입력 2008년 11월 1일 06시 38분


■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시나리오 플래닝 모니터그룹 GBN 보고서 심층 리뷰

국제 공조 성공하면 내년 하반기 정상화

각국 대책 효과 적을땐 새 규제 등장할 듯

환란때와 달라 ‘무조건 구조조정’ 피해야

《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혼란에 휩싸였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 또는 ‘나침반’ 역할을 해 주는 경영 도구가 바로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변화의 핵심 동인(動因)과 불확실성 요인을 조합해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미래의 모습(시나리오)을 그리고, 각각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방법론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모니터그룹이 최근 내놓은 ‘세계 금융위기의 정치·경제적 영향 시나리오’ 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조원홍 모니터그룹코리아 대표와 함께 그 내용을 심층 리뷰했다. 이번 보고서는 옛 소련 붕괴를 예측한 피터 슈워츠가 이끄는 모니터그룹의 미래예측 전문 자회사 GBN(Global Business Network)이 작성했다.》

○ 낙관적 시나리오

모니터그룹 보고서는 가장 낙관적인 것부터 가장 비관적인 것까지 4개의 시나리오로 이뤄져 있다. 조 대표는 “현재 세계 경제는 이미 자율적인 조정이 가능한 국면(시나리오1)을 지나 두 번째 시나리오로 접어든 상황”이라며 “11월 중순에 열리는 G20 회의 등을 통해 올해 안에 국제적인 협력방안과 실행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상당히 어려운 상황(시나리오3이나 4)이 펼쳐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나리오1: 벼랑 끝으로부터의 회귀=이 시나리오는 각국 정부의 효과적인 초기 개입과 금융 시스템의 자율조정 메커니즘을 통해 금융위기가 점진적으로 진정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는 주택 가격이 회복해 부실화한 모기지 자산의 추가 하락을 막고, 세계 경제가 다시 성장 궤도에 진입한다. 9월 중순까지만 해도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상당히 컸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세계 경제는 ‘루비콘 강’을 건너버렸다.

▽시나리오2: 2008년의 바닥을 딛고 상승=이 시나리오에서 세계 경제는 2008년 경기 바닥을 찍고 2009년 하반기부터 회복을 시작한다. 단, 2009년 상반기에도 고통은 남아 있을 것이다. 주요 선진국과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가 포함된 G20은 올해 안에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공조 방안에 합의한다. 공조 방안은 추가 금리 인하, 은행의 국유화, 금융시장의 자금난 해소 등을 포함한다.

이에 따라 올해 말 선진국 은행의 유동성 환수(디레버리지)가 진정되고, 자금시장에 돈이 돌기 시작한다. 부동산 담보대출의 재개와 미국 등 각국 정부의 악성 모기지 자산 국유화로 내년 중반에는 주택 가격 하락이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진정된다.

이 시나리오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 경제모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중국식 경제 모델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수정(guided) 자본주의’가 확산되며, 이는 남미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이들 국가가 경제 개발을 위해 점점 더 중국에 의존하게 되면서 서방 세계로부터 중국으로의 권력 이동이 가속화한다.

○ 비관적 시나리오

조 대표는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 경제가 시나리오2 단계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시나리오3이나 4로 넘어갈 것인가 여부”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한 국제적 합의가 각국 내부의 정치 갈등 등으로 인해 실행되지 않을 때 위험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며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 같은 돌발 상황도 시나리오3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G20 등의 국제적 합의가 각국 내에서 일관적으로 실행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조 대표는 “이를 위해서는 각국 내의 ‘사회적 합의’가 필수”라고 말했다.

한편 국제 공조의 성패를 좌우할 캐스팅보트는 중국과 러시아가 쥐고 있다는 것이 조 대표의 설명. 특히 중국이 미국의 패권 구도를 다극화 체제로 개편하고자 할 때에는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시나리오3: ‘신(新)브레턴우즈 체제’=국제공조와 각국 정부의 개입이 실패로 끝나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파격적인 조치를 취할 기회가 사라진다. 세계 증시가 폭락하고, 금융위기가 실물 경기에 미치는 충격이 더욱 커진다. 신용경색 확산, 지속적인 주택 가격 하락, 실업률 증가 등 사회 불안도 증폭된다.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금융 시스템의 실패는 새롭고 강력한 국제기구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킨다. 심각한 경기침체가 반강제적인 국제 공조를 이끌어 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브레턴우즈 체제’(1944년 세계 44개국이 달러 기준 고정환율제의 도입과 국제통화기금 및 세계은행 창설에 합의)에 맞먹는 세계 규제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탄력을 받는다. 따라서 바젤2로 대표되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미비한 현 체제로부터 세계적 규제 시스템(중앙집권화된 글로벌 금융 및 통화 관리) 쪽으로의 이동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실현된다 해도 세계 경제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은 시나리오2의 경우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기침체는 더 심각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시나리오4: 긴박한 상황 전개=국제공조 또는 강력한 국제기구 창설이 무산되면 금융 위기가 장기화한다. 2010년 혹은 그 이후까지 지구촌 경제가 위축됨에 따라 대공황의 우려도 증폭된다. 최악의 경우 10년에 걸친 세계 장기 불황이 현실화한다.

부동산 폭락과 거대한 경상수지 적자라는 이중고를 겪는 국가들(미국 스페인 아일랜드)에서는 국내총생산의 감소율이 두 자릿수에 이른다. 인플레이션으로 세계 각국은 심각한 불경기를 겪는다. 미국 달러 가치는 폭락해 세계 일부 지역에서는 국제통화가 유로화와 엔화 등으로 대체된다.

정치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이 전개된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세계화의 실패에서 찾는 세력은 국수주의로 회귀하고, 구제금융에 국민의 혈세가 지원됨에 따라 민중의 분노가 깊어진다. 민족주의 정서의 증가와 함께 국가 간 전쟁 가능성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재정적자를 겪는 미국은 방위비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이로 인한 안보 공백 때문에 중동과 동아시아를 포함한 여러 지역의 정세가 불안해진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 경제도 파국에 이를 수 있으며, 사회적 갈등이 깊어지고 남북관계 역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 대공황 같은 파국 가능성 낮아

조 대표는 “현재 가장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은 시나리오2와 3”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세계 경제는 시장이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는 ‘복원력’이 강해 대공황 시대와 같은 파국이 올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시장 복원력의 핵심은 1930년대와 다른 각국 경제의 개방성과 이에 따른 자유로운 자금의 이동이다. 하지만 조 대표는 “정부와 기업은 네 번째 시나리오가 발생할 경우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며 “시나리오 플래닝은 정답을 골라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혹시라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른바 ‘신브레턴우즈 체제’에 대한 논의는 이미 유럽에서 공론화하고 있다. 만약 금융위기의 불씨가 단기간에 꺼지지 않을 경우 현 상황에서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자유방임’에서 ‘중앙통제’로의 이동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를 비롯해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WTO) 총재,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이 신브레턴우즈 체제에 지지를 표명했다.

조 대표는 마지막으로 “기업들이 이번에는 1997년 외환위기를 교훈으로 삼아 무조건적인 구조조정을 지양해야 한다”며 “대신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을 지속하고 철저하게 미래를 예측해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노력을 계속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경기가 어렵다는 핑계로 성장의 기회를 놓치는 것도 경영상의 리스크”라고 덧붙였다.

모니터그룹은 시나리오 보고서의 내용을 책자로 만들어 3일부터 배포할 예정이다.

:모니터그룹:

1983년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등이 설립한 글로벌 전략 컨설팅 회사다. 현재 전 세계 32개 사무소와 전문인력 1500여 명을 운용하고 있다. 모니터그룹코리아는 1989년 한국에 설립됐으며, 한국 경제의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경영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GBN:

모니터그룹의 자회사이며 피터 슈워츠 등 세계적인 미래학자와 전략가들이 설립한 시나리오 플래닝 전문 회사다. 새로운 트렌드와 그 파급 효과를 연구하고 있으며, 기업과 국가를 대상으로 한 시나리오 개발과 미래 대응 전략 제시가 주요 업무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국내 최초의 고품격 경영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0호(11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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