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에는 공화 민주 양당 간 전통적인 정치철학의 차이 말고도 조지 W 부시 정부의 실정, 인종차별 문제, 흔들리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 최근 폭발한 공황에 가까운 금융경제 위기 등 여러 변수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당락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역시 후보 당사자의 됨됨이와 능력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점에서 오바마의 극적인 부상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안 되든 미국이라는 나라에 관해, 인간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하는 이야기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오바마는 미국 백인 여대생과 케냐에서 온 유학생 사이에서 탄생한 혼혈인이다. 정치적 야망이 컸던 그의 아버지는 버락의 출생 후 곧 케냐로 돌아갔고 유년 시절 하와이에서 외조부모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란 그는 인도네시아 유학생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가 자카르타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지냈다. 그가 아버지를 접한 것은 10세 때, 정치적 생명이 끝나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가 옛 처가를 방문했던 1주일간으로 실망스러운 만남이었다.
비주류 중 비주류의 인생
매우 흥미로운 점은 그래도 오바마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법학기관지의 편집장으로 발탁되었을 때 ‘보스턴 글로브’지의 요청으로 집필한 자서전의 제목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꿈’이라고 붙였다는 사실이다.
다행히도 오바마는 감수성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와 외조부모의 보호 덕분에 인종차별의 피해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 자랄 수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비판적 사고의 능력을 갖춘 고교 시절부터는 인종편견에서 오는 아픔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고 혼혈인이지만 정체성은 흑인으로 정립하기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린다. 백인으로 행세하면 많은 이점을 누릴 수 있겠지만 자기가 그렇게 사는 한 미국사회의 여러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고쳐 나가는 일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아버지의 고향 케냐에서 그는 말과 문화는 다르더라도 정서적 뿌리가 그곳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처음 선택한 일거리가 시카고 흑인빈민촌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음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태생으로 볼 때 오바마는 미국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에 속한다. 처음 그 이름이 대통령 후보로 떠오를 때는 미국의 흑인들도 그를 외래인이라고 외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바마가 흑백의 경계선을 뛰어넘어 인간으로서, 정치 지도자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촉진제가 되기도 했다. 자기의 꿈을 미국 흑인사회가 아니라 좌절한 케냐의 정치인이었던 아버지의 꿈과 연결시킨 그의 폭넓은 비전과 도덕적 용기와 결단은 어머니의 헌신적 노력의 뒷받침으로 미국 최고의 엘리트 교육 코스를 밟으며 다져온 그의 지적, 문화적 역량과 함께 오바마가 인종 간 장벽에 갇히지 않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세계 모든 사람의 대변인과 희망으로 떠오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미국은 본래 압박과 차별과 가난에 시달리는 모든 피곤한 사람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을 갖게 해주는 기회의 땅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출범한 나라였다. 하지만 흑인에게 미국인은 잔혹한 노예주였고,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에게는 무법의 약탈자였다. 노예해방 이후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미국 이민의 길은 훨씬 넓게 열렸고 나치와 스탈린 독재에 맞서 자유세계를 보호하는 데 미국은 백기사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대내적으로는 종교, 인종, 성에 근거한 차별의 깊은 뿌리를 제거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과 싸움을 계속해야 했고 공산권 붕괴 이후로는 노쇠해 가는 패권국가로서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온 세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미국의 이상은 살아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바마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뜨거운 호응은 미국적 이상이 아직도 효력을 소진하지 않았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가 아닌가 한다. 오바마가 미국의 새 얼굴이 된다면 그것은 미국이 위대한 나라로서 생명력을 재충전할 기회를 갖는 것이며 차별이 없지만 수준과 품격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정치의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확인해 주는 일로 크게 반길 만하다는 것이 내 개인적 생각이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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