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황중연]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이보그

  • 입력 2008년 11월 3일 03시 01분


“유비쿼터스 환경으로 사람과 기계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가 확산된다. 인구의 절반은 사이보그가 되고 현실세계를 파괴할 만한 치명적인 사이보그 바이러스가 출현한다.”

미국 전문지 ‘인포월드’가 2008년 9월호에서 향후 10년 안에 일어날 정보기술 분야 10가지 ‘미래 쇼크’ 중 하나로 꼽은 대목이다. 사이보그(Cyborg)란 신체 일부를 기계 장치로 개조한 인간이며, 사이보그 바이러스는 일종의 컴퓨터 바이러스다. PC와 컴퓨터 바이러스의 출현을 예고한 인포월드의 분석이라 예사롭지 않다.

신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빠지자 이를 박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싸움을 벌이는 영화 ‘아웃브레이크’가 생각난다. 바이러스의 위험과 심각성, 인류의 위기를 실감나게 묘사한 내용으로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100여 년 전 발생한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는 지구에서 2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후 발생한 아시아독감과 홍콩독감으로 각각 100만 명이 사망했다. 1981년 미국에서 첫 환자가 보고된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는 2500만 명에 이른다. 이처럼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치명적이므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에이즈,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등 생물학적 바이러스는 우리를 더욱 위협하고 있다.

유비쿼터스 세상에서 우리는 새로운 바이러스인 컴퓨터 바이러스와 대면해야 한다.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의 복제품이 성행하자 1985년 파키스탄의 프로그래머가 사용자를 골탕 먹이기 위해 데이터를 파괴하는 악성 바이러스를 유포시키면서 컴퓨터 바이러스가 탄생했다.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컴퓨터 바이러스의 종류는 6만 종을 훨씬 넘어섰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생물학적 바이러스처럼 사용자 몰래 자기 자신을 다른 프로그램에 복제함으로써 스스로 증식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 물리적인 접촉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진다. 병원균은 공기를 통해 서서히 퍼져가지만 컴퓨터 바이러스는 30분 이내에 전 세계 네트워크로 확산될 수 있다.

모든 전자기기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유비쿼터스 세상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는 생각 이상으로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거리의 가로등과 신호등을 끄거나 오작동을 일으키고, 홈오토메이션 등 다양한 장치를 제멋대로 작동시키는 일은 작은 사례이다. 금융 통신 가스 등 네트워크로 연결된 국가의 인프라가 컴퓨터 바이러스의 출몰로 순식간에 정지되거나 무용지물이 되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컴퓨팅과 네트워크의 의존도가 높아진 우리 사회에서 앞으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선진국에서는 몸속에 장착한 칩을 통해 가족과 감정을 교류하거나, 새로운 두뇌칩으로 교체해 인간의 타고난 본성과 행동을 바꾸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공상과학 영화나 만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일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만일 이식한 칩에 사이버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체에 치명적인 위협과 부작용이 발생하고, 생명과 건강을 위한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사이버 바이러스는 우리 생각 이상으로 위협적이고 심각하다. 다만 우리가 간과할 뿐이다. 제1, 2차 세계대전이 인간 대 인간의 전쟁이었다면 3차 대전은 인간과 바이러스의 전쟁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경고를 지나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악몽 같은 영화 속 장면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 쇼크’를 지금부터 예측하고 철저히 준비한다면 우리는 편안하고 안전한 미래를 맞을 수 있다.

황중연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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