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공종식]다문화가정은 우리 자산이다

  • 입력 2008년 11월 4일 02시 54분


뉴욕 맨해튼과 바로 붙어 있는 뉴저지 주 포트리는 한인 비율이 35%에 이르는 도시다. 도시에는 한글 간판이 즐비해서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릴 정도다.

2006년 이곳에선 교육과 관련해 큰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뉴저지 주가 초등학교에서 정규수업의 절반을 각각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하는 이중 언어교육을 도입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관련 토론회를 취재했는데, 주정부 논리는 이랬다. “포트리는 미국 학생들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기에 최고의 언어조건을 갖췄다. 한국은 현재 경제규모가 세계 12위다. 이중 언어교육이 실시돼 포트리초등학교를 졸업한 미국 학생이 나중에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면 본인뿐 아니라 미국 사회의 경쟁력도 높아진다.”

그렇지만 자녀들의 영어실력이 뒤떨어질 것을 우려한 한인 학부모들이 반대해 이 방안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멜팅포트(melting pot).’ 다인종 출신 이민자들이 용광로에서처럼 녹아서 미국 사회에 융화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 미국은 이민자들의 다양한 문화를 일방적으로 미국 사회라는 ‘주형틀’에 녹이려 하지 않는다.

뉴욕특파원으로 3년 있으면서 딸이 다녔던 학교 축제에 가봤다. 빠지지 않는 것이 ‘인터내셔널 축제’다. 다양한 인종, 민족 출신 학생들이 전통 문화 공연을 하고, 학부모들은 전통 음식을 준비해 온다.

그때 처음으로 일본의 전통 춤인 북 공연을 구경했다. 우크라이나와 레바논 음식도 맛보았다. 비록 귀에 낯설었지만 인도 음악을 들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적어도 요즘 대도시 주변 학교에 다니는 미국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처럼 다양한 문화에 노출되면서 자란다. 이들이 성인이 돼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미국인이 많아진다면 미국 사회가 글로벌 환경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한 요인이 될 것이다.

요즘 젊은 한인 교포들도 많이 달라졌다.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열심히 가르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과거 재미교포 1세대가 자녀들이 영어를 하루라도 능숙하게 잘할 수 있도록 집에서조차 한국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에 살더라도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앞으로 직장 등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 출신 이민자도 마찬가지다. 딸 친구 중에서도 학교수업이 끝난 뒤 중국어나 그리스어, 폴란드어를 배우는 아이를 많이 봤다.

요즘 한국에선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다.

최근 국감통계에 따르면 학령기 다문화가정 자녀가 2만5000명에 이르는데, 이 중 상당수가 다니는 학교에서 친구들의 따돌림과 학습부진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다고 한다.

언젠가 신문에서 베트남 출신 어머니가 집안의 반대로 아이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낯선 땅에서 자녀와 모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사실 다문화가정 자녀가 어머니 문화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은 한국 사회 전체로도 손해다. 앞으로 20년 뒤 베트남 시장에서 베트남어를 구사하는 한국 회사원과 그렇지 못하는 일본 회사원이 경쟁하게 될 때 누가 유리한지는 분명하다.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한국 사회의 경쟁력을 높이게 될지, 아니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사회불안지수를 높이게 될지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달렸다고 볼 수 있다.

공종식 국제부 차장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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