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형준]환경운동 하느라 도덕성 소홀?

  • 입력 2008년 11월 4일 02시 54분


환경聯“정부와 싸우다 공인책임 잊어” 횡령 사과문

“개발 일변도의 정부 정책과…자본의 힘에 맞서 싸우는 데 치중한 나머지…공인으로서의 가치와 책임감을 추구하는 일에 소홀히 하였다는 점을 통감하고….”

국내의 대표적인 환경운동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은 3일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최근 잇달아 드러난 전·현직 간부 활동가들의 억대 공금 유용 사건에 대한 사과였다.

그러나 이날 사과문의 발표 과정과 그 내용을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이건 아닌데…”였다.

전·현직 간부들의 공금 유용이 불거지고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자 환경운동연합은 1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쇄신책과 사과문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대부분은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이 국민 앞에 나와 머리 숙여 사죄한 뒤 사과문을 발표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기자회견도 없이 달랑 A4 용지 한 장짜리 사과문을 기자들에게 e메일로 보냈다.

사과문의 내용도 실망스러웠다.

환경운동연합은 사과문에서 “최근의 사태는 부실한 회계시스템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회계시스템이 왜 불투명했는지 납득할 만한 해명과 사과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보다 근본적으로는 개발 일변도의 정부 정책과 개발을 앞세운 자본의 힘에 맞서 싸우는 데 치중한 나머지 환경운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져야 할 공인으로서의 가치와 책임감을 추구하는 일에 소홀히 했다”며 책임을 정부와 자본 탓으로 돌리는 듯했다.

개발의 논리, 자본의 논리와 힘겹게 싸우느라 도덕성을 조금 소홀히 한 것을 두고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뜻인지…. 진솔한 사죄가 아닌 이런 변명은 설득력이 없다. 사과문을 읽어본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권력기관의 부정부패를 감시할 시민단체, 정부보조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시민단체는 도덕성이 생명입니다. 도덕성은 그 무엇보다 앞서야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대표 환경단체의 사과문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여기엔 왜 머리를 숙여야 하는지,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등 우리가 기대했던 반성은 빠져 있다.

남의 눈에 티는 잘 보더니, 제 눈의 들보는 못 본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황형준 사회부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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