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지도자를 겪어보지 못한 탓일까. 부시 대통령의 초라한 뒷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과 겹쳐진다. 같은 공화당 대선 후보에게도 버림받아 유세지원도 한번 못하고 은둔하다시피 하는 그의 모습에서 연민마저 느껴진다.
그의 과거는 누구보다 화려했다. 취임 첫해 9·11테러를 맞은 지 한 달 만에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92%의 지지를 받아 역대 대통령 중 최고를 기록한 지도자다. 결국 올해 들어 역대 대통령 중 최저(19%)도 함께 경험했지만…. 지지율 변화 폭만큼이나 재임 8년 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다.
9·11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지금도 계속되는 테러와의 전쟁, 선제공격론, 악(惡)의 축, 네오콘, 관타나모 수용소…. 전쟁과 관련되거나 공격적인 단어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 와중에 우리는 북한 핵과 관련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까봐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그의 재임을 특징지을 만한 단어조합 2개를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와 ‘탐욕과 공포(greed and fear)’다. 전자는 이라크전쟁의 작전명이고 후자는 최근 불어닥친 금융위기의 본질을 빗댄 말이다.
‘충격과 공포’ 작전 이후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WMD)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은 도덕적으로 상처를 입었다. 명분 없는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또 관타나모 수용소로 인권국이라는 명성에도 금이 갔다. 그의 인기는 추락했다.
급기야 그의 임기 말 월가에 번진 금융위기, 그 여파는 심각했다. 탐욕으로 커가던 시장은 감춰진 부실규모를 몰라 공포에 떨었다. 그는 연일 TV에 나와 “시장 안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호소했지만 시장은 냉담했다. 미국 자본주의 상징인 월가는 무너져 내렸고, 세계 경제는 휘청거렸다. 금융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기는 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결이 다른 두 가지 ‘공포’ 체험을 거치면서 떨어진 부시 대통령의 인기만큼이나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은 달라졌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세기는 끝났고 중국의 세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는 미국이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주변의 협력 없이 독불장군 식으로 일을 처리하기는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평화보다는 전쟁, 소통보다는 독선을 택한 지도자 부시 대통령. 그는 퇴임 후 고향 댈러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도서관과 중동권에 민주주의를 전파할 연구소를 세우는 게 목표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그가 지미 카터처럼 퇴임 후가 더 멋진 대통령에 합류하기를, 그리고 상처는 깊지만 여전히 초강대국인 미국을 이끌 당선자가 무엇보다 먼저 우리 경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미국 경제부터 살려내기를 기대해 본다.
윤양섭 국제부장 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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