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한국 교육, 어디 義人없소?

  • 입력 2008년 11월 5일 03시 01분


올해 교육과학기술부 예산은 42조 원에 달하고 지난해 사교육비 규모는 정부 집계로 20조 원에 이른다. 국가 총예산에서 공교육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다. 연간 사교육비 규모는 실제로는 20조 원보다 훨씬 많다는 게 정설이다. 학부모들이 구체적인 액수 공개를 꺼리기 때문이다.

교육 쪽으로 흘러드는 돈의 뭉치가 해마다 커지면서 교육계에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힘을 쥔 ‘권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해마다 조 단위의 예산을 집행하는 시도교육감이나 공교육 불신을 틈타 돈을 벌어온 학원, 조직력으로 뭉쳐 있는 교원단체가 그들이다.

교육감, 학원, 교사의 잇속 챙기기

학생 학부모들은 그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수요자이면서도 구조적으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싫든 좋든 학교와 학원에 갈 수밖에 없다. 돈이 모이고 특히 공급자 일변도의 시장이 형성되면 부패와의 결탁 같은 폐해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한국 교육이 그런 상황이다.

지난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이런 ‘교육권력’의 치부를 확 들추어냈다. 유세장에서 ‘서울 교육을 전교조에 맡겨서야 되겠느냐’고 호소하던 공정택 교육감은 커튼 뒤에서 거액의 선거자금을 학원 관계자로부터 빌렸다. 서울 시민들은 ‘교육청과 학원은 공생 관계’라는 새로운 사실에 눈을 떴다.

입시학원의 횡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힘없는 학부모를 상대로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시도교육청이 정해놓은 학원비 기준가격은 실종되고 부르는 게 값이 되고 말았다. 학원끼리 담합해 과다 징수에다 ‘끼워 팔기’ 같은 편법 징수가 횡행하고 있다. 학원의 33%가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하고 있다니 큰돈을 벌면서도 세금은 제대로 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교육감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전교조는 교원평가제에 극력 반대하면서 학부모들을 그간의 ‘환상’에서 깨어나게 했다. 전교조가 교사들의 이익옹호 단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지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도 전교조는 같은 이념적 성향의 후보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얼마 후 공 교육감이 학원 관계자에게 돈을 빌렸다는 소식에 체면 불구하고 비난공세를 펴고 나섰다. 오로지 ‘권력 쟁취’에만 관심 있는 모습이다.

저마다 잇속 차리기에 급급한 기득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 교육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다. 먼저 달라져야 할 것은 교육행정 쪽이다. 새 정부의 교육자율 방침에 따라 시도교육청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교육감은 ‘교육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권한이 커졌다.

전교조 등 이른바 진보 진영이 교육감 선거에 먼저 뛰어든 것은 직선제를 하면 ‘교육 대통령’ 자리를 쉽게 차지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는 이념대결 구도로 가면 진보 쪽이 이길 확률이 높다. 보수 쪽에서 강조하는 엘리트 교육은 지지하는 사람보다는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대중의 반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승리는 손에 쥔 것이나 다름없다.

교육이 인기대결로 가는 것 막아야

그러나 여러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할 교육을 인기투표로 결정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버락 오바마 후보만 해도 진보적 성향이지만 교육공약으로는 철저히 저소득층에 교육 기회를 넓혀주는 한 방향에 집중하고 있다. 공립학교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차터 스쿨을 지원하고 유아교육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후보는 학생 성적에 따른 교사 능력급제에 찬성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 진영이 국제중학교 반대의 경우처럼 찬반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우고 ‘1%를 위한 귀족학교’라는 식으로 교육을 정치선전의 장으로 몰아가는 것은 나쁜 전략이다. 이런 권력 욕심에 맞서기 위해서도 교육행정가의 도덕성은 필수적이다. 한국 교육에 책임감 있는 의인(義人)이 참으로 아쉽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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