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의 ‘김성근 설득작업’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사상 최초의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냈던 두산 김경문 감독에 이어 한국시리즈 2연패에 성공한 SK 김성근 감독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직을 거부함에 따라 KBO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현역 두 감독이 ‘노’라고 밝히면서 나머지 현역 프로구단 감독도 대표팀을 맡기 어려운 분위기기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권 밖에 있는 재야 인물 중에서 사령탑이 나올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KBO 윤동균 기술위원장은 4일 오후 6시30분, 서울 이태원의 한 커피숍에서 SK 김 감독을 30여 분간 만나 사령탑을 맡아줄 것으로 부탁했으나 평소 “대표팀 감독은 내 자리가 아니다”고 밝힌 김성근 감독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재표명, 설득작업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KBO 하일성 사무총장은 “SK 김 감독을 WBC 사령탑으로 내정하고 만난 것은 절대 아니다. 평소 언론에 알려진 것이 김 감독의 진의인지 의사타진을 하기 위한 자리였다”면서“대표팀 감독의 경우 본인 의사가 중요해 사전에 상의 차원에서 먼저 만나야 한다. KBO는 김 감독 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후보 감독군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윤동균 위원장이 김 감독을 만나보니 김 감독께서 최선을 다해 대표팀을 도와주겠지만 몸이 좋지 않아 감독 자리는 맡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당초 윤 위원장은 5일 기술위원회 소집에 앞서 이른 아침 다시 김성근 감독을 찾아 ‘삼고초려’할 생각도 갖고 있었지만 이것도 없던 일이 됐다. 하 총장은 “한국프로야구에 대표팀 감독 맡을 분들은 많이 있다”고 밝혀 더 이상 김 감독에게 매달리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하 총장은‘여러 후보군 중 하나’라고 김 감독과의 만남을 애써 평가 절하했지만, 윤 위원장이 김 감독을 만난 건 의례적인 ‘의사타진’ 형식이 아닌 ‘부탁 차원’이었다. 김 감독을 WBC 사령탑으로 ‘모시기’위한 KBO의 작업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이끈 두산 김 감독이 올 3월 대만 최종 예선때부터 “내 임무는 8월까지다”고 굳은 소신을 밝힘에 따라 KBO는 SK 김 감독을 차기 후보로 꼽았다. 하 총장은 한국시리즈 기간 동안 SK 신영철 사장을 만나 “김성근 감독이 WBC 감독을 맡아줬으면 한다”고 밝혔고, 이 자리에서 신 사장은 “대승적 차원에서는 맡을 수도 있지만 김 감독님을 생각할 때 타이밍이 아닌 것 같다”고 반응했다.
두산 김 감독에 이어 SK 김 감독도 거부함에 따라‘독이 든 성배’로 전락한 WBC 사령탑을 누가 맡을 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