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실보다 명분만 앞세운 法이 국민 힘들게 한다

  • 입력 2008년 11월 8일 03시 01분


정부가 비정규직근로자 보호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도록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을 추진한다. 이 역시 근본 해법은 아니지만 기업 사정이 워낙 어려워 ‘해고 대란’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법 시행 2년이 되는 내년 7월이면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한다. 그 부담 때문에 그 전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대부분 해고할 게 분명하다.

고용불안과 불합리한 임금 차별을 고치겠다고 만든 법이지만 이처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일자리 불안은 더 커지고 삶은 후퇴했다. 시행 1년 사이 비정규직 근로자가 갈 수 있는 일자리는 13만 개나 감소했다. 평균임금도 정규직이 11만9000원(6%) 오른 반면 비정규직은 1000원이 줄었다. 1년 이상 계약 근로자 대신 1년 미만 근로자와 시간제(주 36시간 미만 근무) 근로자가 늘고 있는 것은 기업들이 채용 2년이 지나면 무조건 정규직으로 바꿔줘야 하는 비정규직 고용을 기피해서다.

성매매금지법으로 일자리를 빼앗긴 집창촌 여성들도 “일자리를 달라”고 절규한다. 전국 집창촌 여성모임인 한터여성종사자연맹은 지난달 20일 기자회견에서 “4년 전 법 시행 이후 성매매가 줄기는커녕 음성화해 더 성장했다”며 “법이 오히려 우리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에도 좋은 법과 나쁜 법이 있다. 아무리 뜻이 좋고 명분이 있어도 그 법 때문에 오히려 국민의 실질적 권리가 침해당하거나 세금이 낭비된다면 그건 나쁜 법이다. 사전에 위헌 여부를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아 혼란을 초래한 법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학교용지부담금법이 대표적이다. 학교용지 매입비용은 아파트 입주자들이 내야 한다는 법에 따라 25만여 명이 4500여억 원을 냈는데 이제 그 환급 업무로 전국의 지자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환급금 신청 창구에선 최초 분양자와 현 소유자 간의 ‘권리 시비’가 그치지 않는다. 법을 준수한 대가(代價)가 이런 것이라면 누군들 분통이 터지지 않겠는가.

위헌심판 청구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1989년 425건이었던 것이 지난해 1742건으로 4배 넘게 늘었다. 국민의 권리의식이 신장되기도 했지만 국회가 양산한 ‘나쁜 법’들 때문에 힘들어진 국민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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