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승호]어떤 M&A

  • 입력 2008년 11월 12일 02시 56분


지금 유럽에서는 인수합병(M&A) 하나가 진행되고 있다. 규모나 의미가 작지 않지만, 웬일인지 국내에서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M&A의 구조는 대략 다음과 같다.

2005년 초 A가 B로부터 C의 지분 22%를 인수하면서 C의 대주주가 된다.

2005년 말 A는 자회사인 C와 같이 D로부터 E의 지분 ‘50%-1주’를 인수한다.

2008년 F는 C와 합병하면서 G를 설립한다. 동시에 G는 A로부터 투자를 받는다. 그 결과 G의 지분구조는 F 58%, A+C 39%, 우리사주 3%가 된다.

이 거래는 올해 4월 의향서가 교환됐고 내년 2월 최종 체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꽤 복잡한 거래다. 그런데 A∼G가 누구인지 알고 나면 이해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또 좀 놀랄 수도 있다. 이들의 정체는 다음과 같다.

A: ‘CVC캐피털파트너스’라는 영국의 사모펀드(PEF·private equity fund)

B: 덴마크 정부

C: 덴마크 우체국

D: 벨기에 정부

E: 벨기에 우체국

F: 스웨덴 우체국

G: 유럽 3개국의 우편사업그룹

3개국의 우체국을 통합하는 이 거래를 주도한 곳은 CVC다.

규모의 경제와 서비스 다양화를 통해 우편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 통합의 취지다. 인터넷 e메일과 페덱스, DHL 등 민간 택배 서비스의 발달은 이들 우체국에 감당하기 힘든 도전이었다. “또한 ‘2010년까지 회원국 우체국의 일반우편배달 서비스에 대한 독점권을 철폐한다’는 유럽연합(EU)의 결의에 사전 대응하기 위해 이뤄진 결단”이라고 마우드 올로프손 스웨덴 상공부 장관은 설명했다.

가혹한 환경 변화를 목전에 둔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우체국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 셈. G그룹은 3∼5년 내 스톡홀름증시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M&A를 업으로 하는 한 국내 사모펀드의 대표는 “이 거래는 M&A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2000년대 첫 10년간 최고의 M&A’가 될 사례다”라고 말했다. 그의 얘기를 계속 들어보자.

“지켜보라. G그룹은 계속 진화할 것이다. CVC나 이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 것이다. 이 사례는 또 환경 변화에 대한 과감한 대응, 경제 글로벌화에 따른 공공서비스의 진화, 민영화의 진정한 의미, 사모펀드의 향후 역할 등 많은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기업 개혁은 영 딴판이다.

민영화 대상으로 거론되던 공기업들이 정치권과 정부에 집요하게 매달리면서 계획 발표가 여러 차례 연기됐고 ‘결국 용두사미 꼴이 됐다’는 평도 있었다. ‘민영화’라는 용어는 ‘선진화’로 바뀌었다. ‘관료의 나라’ 일본에서도 해낸 우체국 민영화가 국내에서는 거론조차 안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오면서 극복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재정을 적극적으로 편성 및 집행하고 금융 감독기능을 강화하라는 의미다. 이 물살을 타고 예정된 개혁을 지연하거나, 공조직의 몸집을 부풀리는 기회로 삼아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유럽과 한국,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는 잡은 방향이 꽤 다르다. 훗날 종착점은 얼마나 멀어질까.

허승호 경제부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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