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점은 진부할 정도로 자명한 이치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제도개혁에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의식과 행태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제도를 멋있게 고쳐도 정치는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오히려 제도개혁에 대한 냉소만 커지고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만 증폭된다. 기대가 높을수록 결국 냉소와 불신도 비례해서 커진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국회 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회가 여러 측면에서 제도개혁안을 마련했다. 여야 국회의원이 내용 대부분에 동의한다고 하니 조만간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이 봐도 대부분 공감을 자아낼 만한 내용이다. 상시 국회, 상시 국정감사, 국정감사에 따른 제재 강화, 국정조사의 발동요건 완화, 소위원회의 설치 의무화, 청문회의 개최요건 완화, 인사 청문회의 각 소관 상임위 실시 등 오래전부터 언급되던 제도개선책을 망라했다. 이번엔 좀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을 갖게 한다.
이처럼 괜찮은 제도개혁안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의 의식과 행태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사회 일각에서는 오히려 걱정이 크다. 상시 개원 체제에서 여야 간 극한대결도 상시 유지되고 강화되지 않을까. 국정감사에서 되풀이되던 의원들의 안하무인 격 행동을 상시 봐야 하지 않을까. 상시 국감과 잦은 국정조사로 인해 행정공백이 악화되고 국정운영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을까. 활성화된 청문회가 자칫 정쟁의 또 하나의 무대가 되지 않을까. 의무화된 소위원회 심의가 여야 간 갈등을 연장시키고 교착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까.
오늘날 의원들의 행태를 볼 때 이러한 걱정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당의 논평에 대한 동아일보의 분석기사(11월 10일자)에서 알 수 있듯이, 평소 국민 대부분이 느끼고 있듯이 우리나라 의원들은 경직된 정파적 흑백논리에 빠져 있는 모습을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다. 중요도나 사회인지도가 떨어지는 사안에서는 담합하듯이 슬쩍 넘어가는 반면 사회 논란이 되는 사안과 관련해서는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주장을 슬로건 외쳐대듯이 고수한다. 상대 당과 반대편 의원에게 쏟아내는 무시무시한 감정적 언어를 듣다 보면 과연 이들이 같은 입법부 구성원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국회제도 개혁이 성과를 내려면 의원의 행동이 변해야 한다. 자기만 옳다며 물러서지 않는 투사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리며 대화를 통해 때론 설득하고 때론 설득당하는 지성인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시 국회나 상시 국감 등의 제도개혁이 오히려 국회를 더 큰 갈등과 교착에 빠뜨리고 그에 따라 국회에 대한 불신감을 더욱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두렵다.
국회 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회는 제도개혁의 목표로 ‘일하는 국회, 상생하는 국회, 소통하는 국회’를 내세웠다. 이 중 마지막 것이 가장 근본적이다. 의원이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반대 의견을 존중하는 가운데 진정한 의사소통, 즉 숙의(熟議)를 시도할 때 상생은 자연히 이루어진다. 또한 만성적 교착에서 벗어나 생산적 합의에 이르기 용이해진다. 설혹 합의와 성과를 빨리 생산하지 못해도 소통은 의원 상호 간의 신뢰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임으로써 체제 전반의 작동을 원활히 해준다. 결국 이번 제도개혁의 성공은 의원들이 소통을 향해 의식과 행동을 바꿀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하겠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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