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떠러지로 내몰린 GM을 들여다보면 두 개의 ‘U’에 입은 상처가 너무나 크다. 하나는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대유행을 거둔 SUV(Sport Utility Vehicle)이다. SUV의 득세는 법규의 허점과 로비 덕분이었다. 승용차에 대한 연료소비효율 표준이 만들어지자 SUV는 업무용 및 농업용 차량으로 분류돼 예외를 인정받았고 배기가스 규제는 경트럭으로 분류되면서 피해 갔다.
미 자동차업계 ‘빅3’는 큰 규제 없이 생산한 SUV 한 대에 1만 달러를 남겨 먹었다. 이들은 고임금 노동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도 SUV에 집중해야 했다. SUV 양산을 위한 공장 신설과 라인 변경 뉴스가 계속 쏟아졌다. 당시 연비 높은 소형차 개발에 열을 올린 일본 업체들은 빅3엔 웃음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고유가와 경기침체로 SUV 판매가 급감했다. GM은 6월 SUV와 트럭을 생산하던 4개 공장 문을 닫았다.
또 하나의 U는 UAW(United Auto Workers·전미자동차노조)다. 강성인 UAW는 빅3가 공장자동화와 경기침체에 따라 인력을 감축하려 하자 해고조합원 보호에 투쟁력을 집중했다. 해고노동자가 일터로 되돌아오거나 스스로 은퇴할 때까지 회사가 돈을 지급하는 ‘일자리은행(Jobs Bank)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다.
아웃소싱을 포기할 수 없었던 빅3는 어쩔 수 없이 2003년부터 작년까지 이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1만2000명의 해고자에게 35억 달러(약 4조7250억 원)를 퍼주느라 심각한 내상(內傷)을 입었다. 그중 GM 부담은 21억 달러였다. 해고노동자들은 돈을 받으면서 전직(轉職)교육이라도 받았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들이 모여서 한 일은 낱말 맞추기 게임, 비디오 보기, 그냥 앉아 있기였다. 노조 요구에 따라 현직은 물론 퇴직자에게도 의료보험 혜택을 주느라 회사 재정이 바닥난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이런 UAW가 지금은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공적자금을 자동차업계에도 투입하라고 조지 W 부시 현 정부를 압박했지만, ‘지원된 돈이 퇴직자의 복지에 쓰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게 이해가 된다. 이런 마당에 오바마 당선인이 빅3 몰락의 이유를 한국과의 자동차 교역 불균형에서 찾으려 한다면 크게 잘못된 접근이다.
UAW의 화려했던 요구 리스트를 보면서 한국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경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87년 현대차 노조 결성 이후 누적파업일이 366일이다. 노동자 배치전환에 반대하면서 합작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아반떼 등 인기차종 생산라인은 특근을 하는데, 주문물량이 적은 미니버스 라인은 유급휴가를 간다. 신기술 도입은 노사의 심의의결을 거치게 돼 있고 불황 때는 해외공장을 우선 폐쇄한다는 조건도 있다. 회사 경영 상태와는 상관없이 현 노동자가 최대한 혜택을 보겠다는 것 아닌가. 현대차 노사가 별의별 싸움을 다 하는 사이에도 세상은 엄청 바뀔 텐데.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