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대통령의 당직 겸임 금지를 명시한 제7조와 함께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한 당정(黨政) 분리 규정으로 거론되지만 사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정권이 처한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그리고 당내 역학구도에 따라 다의적(多義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대선 직후 한때 친이(親李) 그룹이 이 조항의 ‘당정분리 코드’ 없애기를 시도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당정 공동운명론’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희태 대표는 이명박(MB) 대통령 앞에서 쪽지를 꺼내 이 조항을 낭독한 뒤 ‘당은 대통령을 위하여’ ‘대통령은 당을 위하여’ ‘당과 대통령은 국민을 위하여’라고 구호를 외치기까지 했다.
당헌 8조를 장황하게 인용한 이유는 이명박 집권 2년차의 당정 모델이랄까, 팀워크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 대통령이 외유에서 돌아오면 2년차 개각 준비가 본격화되겠지만, 먼저 받아들여야 할 ‘사실(事實)’이 있다. MB 정권은 기본적으로 게젤샤프트(Gesellschaft·이익사회)라는 사실이다. 전두환 정권 이래 역대 정권은 전우(戰友)나 동지(同志)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일종의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공동사회) 성격이 강했다. 반면 MB 캠프는 반대급부와 이익 공유를 고리로 뭉친 비즈니스 집단에 가깝다. 물론 형님도 있고, 형님 친구도 있고, 이재오도 있지만 본질은 그렇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적 권력 모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하튼 이런 관계에서 이 대통령이 당의 지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은 등가(等價)까지는 몰라도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주는 것뿐이다. 돈을 줄 수는 없으니 결국 자리다. 아무리 ‘여의도 정치’를 싫어해도 이 대통령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지도부가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든든한 ‘백’이 있으니 걱정이 안 된다”고 했지만, 이익 공유의 토대가 무너지면 언젠간 한나라당이 ‘최대의 적’이 될지도 모른다.
대선이라는 싸움은 그야말로 ‘이명박에 의한, 이명박의 승리’였다. 그러나 내년에 끝날지, 후년에 끝날지 알 수 없는 경제위기는 이 대통령의 힘, 그것도 신뢰를 잃은 MB의 힘만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싸움이다. 여당과 함께 팀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집권 2년차 개각은 MB와 한나라당이 그야말로 새로운 트레이드 계약을 하고 한국시리즈, 아니 월드게임을 준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당헌 8조의 당정관계를 살려 ‘의원내각제형(型) 개각’을 단행하는 것이다. 의원내각제형 개각의 상품성은 멀리 갈 것 없이 전문성과 부처 장악력, 당정 조정력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경우만 참고해도 된다.
그러나 당 지도부 개편이 뒤따르지 않으면 의원내각제형 당정 모델의 시너지 효과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먼저 꺼내기는 그렇고, 박 대표가 고민해야 할 과제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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