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희]‘제2의 문근영’ 자주 보고싶다

  • 입력 2008년 11월 17일 02시 50분


1930년 조선의 세밑 풍정은 이랬다. “이 세상에 제일 못 견딜 일은 고문과 빚쟁이에게 졸리는 때다.” 일제강점기 전당포 영업은 발 빠르게 진화했다. 근대적 산업구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조선의 경제구조 탓이기도 했다. 일본 대금업자들은 이 틈을 노려 상업자본과 결합해 조선인에게 비싼 이자를 뜯었다. 고리대금업자에게 졸리자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은 꿈의 노다지, 금광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연예인의 기부, 대중에 큰 영향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가. 주식과 펀드 열풍이 거품처럼 사라지자 금광의 환각은 환멸로 대체됐다. 우리에게 이제 남은 것은 빚과 실업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탓이 크다. 로또복권이 불티나게 팔리고 사채업이 성행한다. 유명한 한 연예인은 사채업자의 빚 독촉에 자살했다. 어떤 이는 이유 없이 고시원에 불을 질렀다. 실업과 생계 위협이 팽만하고 불안은 극에 달한 듯하다. 사람들은 모두 위기 앞에 몸을 움츠린다.

경제위기의 시대, 한 따뜻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최근 5년간 1위의 기부금액(8억5000만 원)을 공개했다. 익명의 기부자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자 누리꾼들은 ‘이름 없는 천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문근영 씨. 국민 여동생, 배우 문근영 씨였다. 누리꾼들의 놀라움과 찬사가 쏟아졌다.

문근영 씨는 5년 전 고교 1학년이던 이맘때 첫 기부금 1000만 원을 입금했다. 광고 출연료가 나올 때마다 500만∼2억 원씩 10차례에 걸쳐 입금했다. 소아암, 백혈병 환자를 위해서 써달라고. 대중의 사랑으로 사는 연예인으로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연예인 사채 빚, 자살 등 연예인의 삶의 형태는 현대 대중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연예인은 우리시대 대중의 꿈이 뭉쳐진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스타일을 따라하고 행동을 추종하고 싶은 ‘공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근영 씨의 기부 사실은 우리를 더욱 기쁘고 놀라게 하고 있다.

문득 얼마 전 대법관 인사청문회 때가 떠오른다. 61억 재산을 가진 대법관 후보자에게 최근 5년간 기부를 얼마나 했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부끄럽지만…없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진 자가 내놓아야 한다는 강제 의무라기보다 사회적 영향력과 파장을 줄 수 있는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모범을 의미한다. 도덕적 사회규범을 스스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고귀한 의무’이다. 국회의원과 공직자를 선출할 때 세금과 병역만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기부(사회 환원)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세련되고 근사한 자기실현 수단

그렇다고 기부가 ‘가진 자’만의 윤리는 아니다. 아름다운 동행 기부재단은 소액기부 확산 운동을 벌이고 있다. 360원 정도의 소액을 자동이체로 매일 기부하는 ‘365 운동’, 저금통 모금 운동인 ‘나눔씨앗 뿌리기’ 등 소액기부 문화를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기부는 세련되고 근사한 자기실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일본프로야구 와다 쓰요시 투수는 1구를 던질 때마다 백신 10개를 기부하고 도쿄 긴자의 어느 도넛 가게는 손님이 간이 포장을 선택해 1상자를 절약할 때마다 120엔의 (소아마비)백신을 기부한다. 기부는 선행이 아니라 습관이다.

금융위기 시대 우리에게 부재한 것은 돈이 아니라 가치가 아닐까. 가치의 기준이 사라지고 윤리의 척도가 사라진다. 비정규직의 단식농성이 계속되고 구조조정 감원이 예고되고 있다. 십시일반, ‘더불어 삶’과 ‘나눔’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다. 기부는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동행자’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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