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에 선 후진타오 주석은 금융위기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경제의 정책 실패에 기인한다며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제도와 국제금융기구를 개혁하고, 특히 억울하게 피해를 본 개발도상국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중국의 지속적 경제 성장과 대규모 경기부양책이야말로 금융위기 해소를 위한 중국의 중대한 공헌이며, 동아시아 지역의 역내 금융협력 및 제도 창출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기금을 확충하기 위해 1000억 달러의 추가 출자를 조용히 선물로 들고 온 데 비해 중국은 문제 제기에 그쳤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국제 금융시스템의 장(場) 밖에서 훈수만 둘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IMF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국가이며, 기축통화 보유국이다. 또 중국의 총수출에서 2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의 시장이다. 서방국가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여전히 ‘비시장경제’ 국가요, 불확실성의 근원이다. 금융위기에 직면한 세계 경제를 보면서도 힘을 다해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경우, 향후 중국의 외교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외환보유액 중 미 달러 자산 규모가 1조 달러 수준인 중국으로서 미 달러 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중국 국부의 손실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오월동주(吳越同舟) 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의 전략은 양면성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의 양자 협력 관계는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도, G20과 IMF,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의 장에서는 철저히 미국을 견제하면서 경제 중심을 동아시아 지역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다. 미 달러 자산의 위험도가 급증하는 가운데서도 중국이 미국을 도와 꾸준히 미 국채를 매입해 온 이유다. 문제는 옛 챔피언과 새 도전자 사이에서 피곤해질 한국의 처지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주도권에 당장 도전할 형편은 아니지만, 동아시아와 한반도를 연습의 장으로 삼을 수는 있다.
이미 중국은 북한을 포함한 접경국가와의 무역 및 투자에 대한 중국 위안화 결제를 추진해 왔다. 대만과의 합의도 머지않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중국의 경제통합도 사뭇 진척이 빠르다. 북한을 옆에 붙잡아 둔 채로 한국 및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요량도 엿보인다.
또 금융위기로 인해 ‘신자유주의론’이 주춤한 가운데 중국은 보호주의적 성격의 제도와 산업정책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다. 반독점법의 시행과 가공교역 규제, 수출환급세율의 상향 조정, 무역구제 조치의 공격적 활용이 대표적이다. 중국과의 무역이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상회하는 한국은 중국이 새로운 제도를 채택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G20 금융정상회의는 한국의 신장된 국제위상을 보여 준 동시에, 동아시아 지역의 급격한 질서 변화에 대한 예감과 불안도 던져주었다. 장내(場內)에서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자칫 동아시아라는 장외(場外)의 새로운 게임에서 수주대토(守株待兎)하는 자세로 연결된다면 이번의 금융위기는 한국 경제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로 남을 것이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 중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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