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갑식]정부-불교계 모두 ‘환지본처’의 자세로

  • 입력 2008년 11월 19일 02시 59분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17일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한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과를 대승적으로 수용한 불교계의 요즘 분위기를 상징하는 말이다.

조계종 기획실장인 장적 스님은 면담 결과를 소개하면서 ‘금강경’의 구절을 인용해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뜻이라며 “사과는 세간의 말이고, 불교적으로는 본래의 곳으로 돌아와 제자리를 찾는다는 이 표현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종교편향 문제를 거세게 제기해온 불교계의 주장은 ‘인평불어 수평불류(人平不語 水平不流)’였다.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면 사람도 말이 없고, 물도 평탄함을 만나 조용히 머무는 데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8월 27일 서울광장에서 20만 명(주최측 주장)이 참여한 사상 초유의 범불교도대회가 개최된 지 나흘 뒤 지관 스님이 조계사 초하루 법회에서 한 법문이다.

불교계가 어 청장의 사과를 수용해 현 정부 출범 이후 지속된 정부와 불교계의 갈등이 일단락됐지만 아직 남은 것이 많다.

환지본처는 단순히 원위치나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본래의 자리를 깨닫고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불교계의 염원을 담고 있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종교차별 입법 문제가 남아 있다”며 “종교편향 문제와 관련해 대승적인 결정을 내렸지만 명백한 결과물이 없을 경우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평무사를 강조한 지관 스님의 법문을 담은 플래카드도 “아직 뗄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총무원에 그대로 걸려 있다.

정부와 불교계는 이제 환지본처의 자세로 갈등의 시간을 겸허하게 돌이켜보아야 한다. 장로 대통령의 취임 이후 본격화된 양측의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불교와 개신교의 종교 간 갈등으로 비화됐고,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면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부는 종교편향을 막기 위한 시스템 마련은 물론 불교계 반발의 핵심이 이른바 ‘책임 있는 인사’의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행동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불교계 역시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불교계 반발이 지나치거나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들을 구제한다).’ 방법은 다를지언정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는 정부와 종교의 근본정신은 다르지 않다.

김갑식 문화부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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