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환율이 슬금슬금 오르긴 했지만 상승폭이 크지 않아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환율이 가파르게 치솟은 9월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피해액이 9월에 5000만 원을 훌쩍 넘더니 지난달엔 7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지금 추세라면 보험 가입으로만 올해 2억 원 정도 손해를 보게 됐다.
피해가 훨씬 큰 키코(KIKO) 가입 중소기업보다는 형편이 낫다지만 연 매출 150억 원의 업체로선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1976년 창업해 30년 넘게 제조업 현장을 지켜온 이 사장은 “앞으로는 남의 말 듣지 않고 내 경험과 감(感)을 믿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상청 일기예보가 현대인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정보인 것처럼 전문가들이 내놓는 경제예보는 경제주체들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소비 투자 성장률 같은 부문별 전망치는 정부와 기업, 가계의 의사결정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그 자체가 실물경제 흐름을 유도하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엉터리 경제전망은 때로 치명적인 피해를 낳는다.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대기업이 투자 확대를 결정하면 하청 중소기업은 은행 빚을 더 내서라도 설비를 늘려야 한다. 예상과 달리 경기침체로 대기업이 주문 물량을 줄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기업에 돌아간다. 빗나간 환율 전망은 은행이 중소기업 사장들에게 키코 가입을 권유하는 근거로 쓰여 피해를 키웠다.
경제예보의 적중률이 떨어진 것은 글로벌 경제통합의 진전, 자본이동의 자유화, 인터넷 문화의 확산 같은 경제환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아무리 경제예측 이론으로 무장한 경제학자라도 경제의 주체인 인간의 심리까지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측과 결과 사이의 편차를 줄이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안정적이고 일관된 정책 운용으로 돌출 변수에 따른 변동 가능성을 줄이고 경제주체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한 예로 정부가 널뛰기식 외환정책으로 환율 변동폭 확대를 부채질하지만 않았더라도 중소기업의 환율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올해는 유가와 환율의 롤러코스터 현상이 유독 심했지만, 다른 지표들도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올해의 ‘학습효과’에다 내년에는 불황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라는 걱정이 겹치면서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2009년도 경제 전망치는 발표 시점이 늦을수록 나빠지고 있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 사례를 들을 때마다 책임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전망은 틀리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말로 얼버무리기엔 경제 예측의 오류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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