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에이커의 산림이 불에 타들어가고 주민들이 대피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머무는 이 도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인 것 같았다. 날씨가 좋기로야 유명하지만, 건조한 기후 때문에 산불이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큰 데다 지진 다발 지역이다. 한밤중에 조립식 책상이 부르르 떨리는 기척을 여러 번 느낀 적도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인 그 희미한 불안감 속에서 나는 학교와 집을 오갔다.
이상한 것은 사람들의 태도인 것 같다. 꽤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다녀본 나로서는 멕시코인 다음으로 이곳 사람들이 낙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에게 언제 산불이 나고 언제 지진이 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질문을 하자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낙천적일 수 있다고. 자신의 힘으로는 손을 써 볼 수도 없는 재해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고 즐겨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이다.
산불-지진에도 안놀라는 美시민
그럴 듯한 말은 왜 늘 실행엔 옮기기 어려운 것일까라고 생각하면서 ‘문학과 영화’라는 수업을 마치고 ‘노스버클리’ 쪽으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그 거리에 내가 좋아하는, 우리식의 문방구 같은 상점이 하나 있다. 특별한 ‘종이’에 개인 이름이 새겨진 편지지나 명함을 만들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의기소침한 일이 생기거나 우울해질 때면 그곳에 가서 노트나 필기도구 같은 것을 사고는 한다.
최근에 1주일 정도 서울에 다니러 간 적이 있었다. 외출을 하면 늘 지나다니게 되는 골목 초입에 간판도 없는 작은 문방구가 하나 있다. 노부부가 한 장소에서 20년도 넘게 문을 열고 있는 집이다. 20년 전, 그러니까 스무 살이었던 내가 글이라는 걸 한번 써 볼까 용기를 내어 맨 처음 대학노트와 모나미 볼펜을 산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오랜만에 그 앞을 지나다 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며칠 후에도 마찬가지여서 주인이 아픈가라고 생각했다. 다시 버클리로 떠나오기 전에 어머니에게 물으니 세가 너무 많이 올라 문을 닫기로 결정했단다. 한 동네에 수십 년 살다 보니 상점이 새로 생기고 없어지는 거야 다반사로 보는 일이지만 그 문방구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이제 어디서 프린트 용지를 사고 노트를 사고 팩스를 보내나 하는 걱정, 그리고 이상한 상실감이 몰려왔다.
버클리의 문방구에서 푸른빛이 도는 톡톡한 종이를 손에 들고 머뭇거리고 있다가 거기에 내 이름을 새겨 달라고 주문했다. 백 장을 만들기에는 값이 너무 세서 스물다섯 장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주인이 샘플 종이에 내 이름을 새겨 넣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산불은 아직도 다 잡히지 않았고 언제 어느 때 다시 지진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런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때로 원치 않은 일, 부당한 일, 도리 없는 일 같은 것도 뒤섞여 일어나기 마련이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의 인생이 위기일지도 모른다는 한 선생의 편지가 생각난다. 그런 일 속에서도 낙천적이고 긍정적일 수 있는 것은 일상이 주는 즐거움을 알고 있고 또 그 즐거움이 주는 의미 때문이 아닐까.
재해불안보다 일상의 기쁨 관심
한 장의 종이에 새겨진 내 이름은 낯설기도 했고 약간은 나를 우쭐하게도 했다. 그 작고 두꺼운 종이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자, 나라는 사람은 한 장의 종이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 자의식까지 생기는 느낌이다. 더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겨도 세상의 ‘힘 있는 책’처럼 의연하게, 한 장 한 장 일상을 살아 낼 수 있을 것 같은 곡진한 마음도 생긴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거대한 문제는 결국 개인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그 문제는 나한테도 언제나 중요하다. 그것은 ‘사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쓰는 것’ 자체이기 때문이다. 생의 희미한 불안에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지금을 ‘쓰는’ 것, 이것이 또한 캘리포니아 산불이 한 이방인에게 준 개인적 교훈이기도 하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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