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동아시아와 한반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가를 알아야 하는 일은 당연하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사람과의 끄나풀이 아니라 한국이 어떤 정책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우리의 메시지다. 워싱턴에 갈 때마다 듣는 말은 “미국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한국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말해 달라”는 것이다. 미국의 심중을 파악하고 한국의 방침을 정하는 눈치 보기 외교나 반응형 외교보다는 한국의 이해가 걸린 사안에 대해 한국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자기주도형 외교를 해야 한다.
美에 묻기보다 한국입장 전달을
오바마 당선인은 북한에 대해 ‘강인하고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이루려는 의지를 밝혔다. 조지 W 부시 정권 초기에 북한과 상대도 안 하면서 강경 일변도의 무시 정책을 펴다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는 자기반성의 결과다. 미국의 신정부는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이나 미북관계 정상화까지 시야에 넣은 정책을 펼 수도 있다. 한국이 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원칙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우선, 핵무장 자체보다 핵 확산에 비중을 두는 미국 당국자들에게 한국으로 보자면 북한 핵무기 자체가 위협이라는 사실을 거듭 주지시켜야 한다. 정치적 성과를 위해 핵을 눈감아주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자칫하면 우리가 핵무장한 북한과 어정쩡한 공존을 하염없이 지속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미북 양자대화에 기대만 걸 게 아니라 한국과 주변국도 참여해 만든 합의의 틀인 6자회담을 적극 활용하도록 조언해야 한다. 미북 대화는 해결의 단초를 제공할 뿐, 양국이 합의했다고 북한 문제 전체가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의 당사국이자 주도국은 한국임을 내세워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미국의 자동차업계가 실패하고 있는 것이 마치 한국의 자동차 때문인 듯이 비치고 있다. 오바마 캠프는 한국에서 미국 자동차가 잘 팔리지 않는다며 FTA 재협상도 불사할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면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희망 섞인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자동차업계가 흔들리고 있어서다.
미국이 압박을 가해 오니 어떻게든 대응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게 아니라 한국의 현실을 미국에 정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미국차가 안 팔린다는 한국 시장에서 왜 렉서스나 BMW는 잘 팔리는가. 한국이 쌓은 무역장벽이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국가 간 협상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다시 테이블에 올리자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한미 FTA 비준이 실패할 경우 가져올 수 있는 동맹에 대한 불신은 미국도 짊어져야 할 숙제다. 한미 FTA가 비준되면 한국만 이익을 보는 게 아니라 미 국민도 득을 보고, 나아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수행에 커다란 발판이 된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미국車 안팔리는 이유 설명해야
미국 경제 재건이 최우선 과제인 오바마 정부는 패권적 개입을 청산하고 국제협조주의에 입각한 선택적 개입 노선으로 전환할 것이다. 그 대신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역할 분담, 비용 분담의 요구는 커져갈 공산이 크다. 글로벌 코리아를 지향하는 한국이 국제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헌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역과 대상, 방법에 있어 한국에 걸맞은 선택이 가능하도록 주장을 해야 한다. 주한미군 관련 비용이 늘어난다면, 한국의 방위능력 향상과 직접 연관이 되는 선택지를 우리가 가져야 한다.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한국의 목소리를 차분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때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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