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러시아 슈퍼마켓에 들르면 그루지야산 포도주를 구경할 수 없다. 올해 8월 그루지야와 전쟁을 벌였던 러시아 정부가 그루지야산 포도주 수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 사는 그루지야인들이 보여주는 포도주는 밀수품이거나 밀주다. 가격도 그루지야 현지의 10배가 넘어 프랑스산보다 비싸다. 이러다 보니 찾는 사람이 드물 수밖에 없다.
인구 500만 명의 그루지야는 2003년까지 자국 포도주 수출량의 80%를 이웃 국가 러시아에다 팔아왔지만 이제는 수출길이 거의 막혀 버렸다.
옛 소련 시절 형제 관계였던 두 나라가 갈라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그루지야 민주화운동인 장미혁명이었다. 23일은 그루지야 민주화운동인 장미혁명이 일어난 지 5주년을 맞는 날이다.
5년 전 그루지야인 3만여 명은 수도 트빌리시에 모여 장기 독재자로 군림하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의 하야 성명을 듣고 장미꽃을 흔들었다. 독재자에 대한 항의 표시였던 장미는 정권교체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됐다.
그루지야 장미혁명은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국가에서 색깔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04년 우크라이나에선 오렌지혁명이, 2005년 키르기스스탄에선 레몬혁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장미혁명으로 정권을 잡고 친미(親美) 반(反)러시아를 택한 미하일 사카슈빌리 정부는 5년 동안 민주화와 성장동력 모두를 잃어 갔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국회와 사법부 수장을 모두 측근들로 채웠다. 부패 근절과 사법 개혁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그와 여비서의 염문설이 도는 사이 경찰은 부정부패에 항의하는 야당 인사들에게 곤봉 세례를 퍼부었다.
모스크바 거리엔 소매상 택시운전사 청소부로 일하는 그루지야인이 넘쳐난다. 이들은 “조국에 일자리가 없어 젊은 과학자와 경제인들이 떠나고 있다”고 말한다. 혁명 이전 9%까지 치솟았던 경제성장률은 올해 3%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5년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 가입을 목 놓아 외쳤지만 유럽은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루지야 시민들은 “장미혁명은 이젠 악몽”이라고 얘기한다. 얼치기 민주화운동이 한 국가를 얼마나 멍들게 했는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정위용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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