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越朴-復朴-晝李夜朴… 한나라의 ‘朴시리즈’

  • 입력 2008년 11월 24일 03시 01분


월박(越朴), 복박(復朴), 주이야박(晝李夜朴), 원박(元朴)….

이명박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느라 국내를 비운 요즘, 여의도와 청와대 주변에서는 ‘박 시리즈’가 회자되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성(姓)에서 나온 용어로 ‘월박’은 친(親)이명박 대통령계 의원들이 박 전 대표 쪽으로 넘어갔다는 것이고 ‘복박’은 지난해 대선과 올해 총선 때 친이계로 갔던 친박계 의원들이 U턴했다는 뜻이다. ‘주이야박’은 공식적으로(낮)는 친이계지만 비공식적으로(밤)는 친박계 행세를 하는 ‘박쥐형 의원’들을 지칭한 것이다. ‘원박’은 원래부터 친박계라는 말이다.

청와대 측이 의원들의 동향에 민감해하며 여의도로 안테나를 뻗치고 있는 것을 보면 ‘박 시리즈’는 언어유희라기보다 실체일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모 의원이 월박 채널이다” 등의 말도 돌고 있다.

친박계 그룹은 작금의 경제위기에 대해 청와대 등 여권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한 자연스러운 정치적 반응이라는 분위기다. 한 친박계 의원은 “안타깝지만 우리를 탓하지 말라”고 했다.

친이계 그룹에서는 “같은 당 의원들끼리 줄 세우기를 할 수 있느냐” “이러다간 지방선거(2010년)를 앞두고 ‘공이만박(空李滿朴·친이계는 없고 다 친박계)’이 될 수도 있다”는 식의 반응이 나온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입만 떼면 야당에 초당적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G20 회의 뒤 17일 라디오 연설에서 “불이 났을 때는 하던 싸움도 멈추고 모두 함께 물을 퍼 날라야 한다”며 경제 살리기를 위한 실질적인 정치권의 협조를 요청했다. 그만큼 경제위기 상황이 절박하다. 그런데도 여권 내부에서는 월박 등의 표현이 나돌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당장 집안 단속부터 해야 할 처지다.

친박계 그룹도 ‘남의 집 불구경’만 하다가는 ‘콩가루 집안의 일원’이라는 정치적 냉소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차기 국무장관으로 내정한다는 소식이 관심을 끄는 것은 오바마 당선인의 ‘포용’ 못지않게 그와 처절하게 싸웠던 힐러리 의원의 ‘협조’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이승헌 정치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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